눅13:1-9 아직 기회가 있을 때 70장
13: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13: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13: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13: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13: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13: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13: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13: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13: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회개를 촉구하신 내용과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 1-5절은 회개를 촉구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 두어 명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고했습니다. 그것은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내용이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갈릴리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사드릴 때 빌라도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말일 것입니다. 아마도 이 사건은 예루살렘에 순례왔던 어떤 갈릴리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물을 드리다가 빌라도의 명을 받은 로마인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에 대한 로마의 통치를 반대하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열심당원들은 유대독립을 위해 유월절과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때에 자주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한 로마군의 탄압으로 이와 같은 사건이 흔히 발생했습니다.
오늘 문맥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아마도 그들은 재앙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각하고 있던 차에 갈릴리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재앙을 당하자 혹 그들이 자신들의 악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진노하심을 얻어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알고자 함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예수님은 물론 그들이 죄 때문에 죽임을 당했지만 그러나 너희들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고 죄가 없는 줄로 아느냐고 책망하시면서 만약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처럼 망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빌라도에게 죽임 당한 갈릴리 사람들을 보고 상대적으로 자신들에게는 죄가 없음을 과시하려 했던 유대인들 역시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지적하심으로써 임박한 진노 앞에서 속히 회개하기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최근에 일어난 다른 또 한 가지 사건을 말씀하셨는데 그 사건이란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서 여덟 사람이 죽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견실하지 못했던 실로암의 망대가 갑작스럽게 무너졌는데 우연스레 그곳에 있었던 여덟 명의 예루살렘 사람이 죽은 일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런 사건은 다른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을 알려주시는 하나의 경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나도 죄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그런 사건을 당할 사람의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다음에 나도 마땅히 그들과 같은 죄에 대한 심판을 받을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같은 사건을 유예시켜 주시는 것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을 바라볼 때 회개의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나도 죄인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 6-9절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자기 밭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은 관상용도 아니요 아무 의미 없이 심은 것도 아닙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심은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사람이 보기에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아름다운 면도 없고 재목감도 못됩니다. 그렇다고 꽃의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만약 무화과나무로부터 열매를 딸 수 없다면 그것은 공연히 땅만 허비할 뿐인 쓸모 없는 나무가 무화과나무인 것입니다.
주인은 이르기를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삼 년이란 세월은 짧은 기간은 아닙니다. 혹시나 금년에는 열매를 맺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연거푸 세 번이나 해를 넘긴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열매를 바라시지만, 그 열매를 오랜 기간을 두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나 우리를 구원하신 그 사랑을 생각하신다면 단번에 찍어버리실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인내하신 것입니다. 육에 속하여 항상 넘어지는 우리를 불쌍히 보시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 삼 년이란 기간은 무화과나무의 경우, 능히 열매를 맺을만한 충분한 기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만약 삼 년이 지나도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나무라면 열매를 기대하기 어려운 나무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 나무에 기대할 것도 바랄만한 소망도 없습니다. 주인은 과원지기에게 이르기를 “찍어 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가라지들이기 때문에 뽑아버리라는 것입니다.
과원지기는 주인에게 탄원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한 주님의 중보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처럼 주인에게 탄원했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의 결과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과연 그 나무가 열매를 맺어 주인의 즐거움이 되었는지, 아니면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끝내 찍힘을 당했는지 그 결과는 우리의 상상에 맡기시고 우리는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경종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오늘 말씀에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라는 말씀 속에는 ‘기회를 한번 더 주세요’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 데려가지 않고 이 땅에 두신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요? 바로 기회를 주기 위해서, 회개할 기회를 주고, 열매 맺을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이 기회를 놓치면 결국 뽑힘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이 바로 나에게 기회입니다. 오늘이 바로 회개할 날이요, 오늘이 바로 내가 믿음의 열매를 맺을 날입니다. 이것을 잊지 마시고, 오늘 결단하고, 오늘 새롭게 시작하는 귀한 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52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