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20:1-13 분열을 일으킨 사람 찬송:341장
20:1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0:2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20:3 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그들에게 관계하지 아니하니 그들이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
20:4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큰 소리로 불러 모으고 너도 여기 있으라 하니라
20:5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모으러 가더니 왕이 정한 기일에 지체된지라
20:6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아가라 그가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20:7 요압을 따르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
20:8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그 때에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 칼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맸는데 그가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20: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은 평안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와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20: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그를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을새
20:11 요압의 청년 중 하나가 아마사 곁에 서서 이르되 요압을 좋아하는 자가 누구이며 요압을 따라 다윗을 위하는 자는 누구냐 하니
20:12 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놓여 있는지라 그 청년이 모든 백성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에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
20:13 아마사를 큰길에서 옮겨가매 사람들이 다 요압을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아가니라
오늘 말씀은 세바의 반란사건에 대한 말씀입니다.
- 1-3절은 반역을 일으킨 세바에 대한 말씀입니다.
앞장 말미에서 우리는 다윗의 환궁 문제로 인해 유다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간에 분쟁이 발생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 일이 도화선이 되어 다윗에 대한 세바의 반란 사건이 일어난 내용의 말씀입니다.
본문은 베냐민 사람 세바가 반란을 일으키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합류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 사람들만은 다윗을 지지, 예루살렘까지 호위합니다. 그리하여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의 본궁에 돌아온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이, 그가 예루살렘을 떠날 때에 예루살렘에 남겨 두었다가 압살롬에게 강간을 당한 10명의 후궁들을 별실에 가둔 일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10명의 첩들을 그렇게 감금하고는 먹을 것만 주고 평생 잠자리를 갖지 않아 그들을 죽을 때까지 생과부로 살게 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번 세바의 반란은,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된 후 다윗이 예루살렘 궁에 돌아오는 와중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칼이 다윗의 집에서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한 나단의 예언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준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이러한 세바의 반란은 유다 지파에 편중된 다윗의 정책적 태도가 발단이 되었긴 하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혈통적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세바의 무모한 행동 탓이었습니다. 세바는 본래 사울과 같은 베냐민 사람으로 자기의 혈통에 대해서 베냐민 지파사람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매우 우월하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울의 몰락 이후 등장한 다윗에 대해서 공공연히 적개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세바는 사울의 친척으로, 다윗이 사울의 왕위를 빼앗았다고 생각하여 다윗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 사이에 틈이 벌어지자 이스라엘 사람들을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세바의 반란은 다윗군에 의해 결국 진압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의 반란은 이후 분열의 길을 가게 될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 내부적 틈을 벌려놨다는 매우 심각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신앙 공동체에서도 절제되지 못한 개인의 감정과 편협한 사고는 전체에 크나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생생하게 교훈 받을 수 있습니다.
- 4-13절은, 요압에 의한 아마사의 죽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앞 단락에서는 세바가 다윗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에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도륵 군장에 임명된 아마사가 일을 지체하는 와중에 그만 요압에 의해 피살됩니다.
세바가 반란을 일으키자 다윗은 곧바로 압살롬의 군사령관이었던 아마사를 불러 사흘 안에 유다의 군인들을 소집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다윗은 전에 압살롬이 지체하는 동안 자신이 마하나임이라는 아주 견고한 성으로 피신하여 살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세바가 그런 견고한 성으로 피신하기 전에 서둘러 그를 잡으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사는 다윗이 정한 시간까지 그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에 다윗은 요압의 동생 아비새에게 자신의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세바를 뒤쫓으라고 명합니다.
아비새가 즉시 군사를 불러 모아서 세바를 추격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서 기브온의 큰 바위 곁에 이르렀을 때 아마사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납니다. 다윗의 명령을 전혀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요압은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입맞춤을 하며 안부 인사를 하는 듯 하다가 숨겨놓은 칼로 그의 배를 찔러 죽입니다.
지난번에 살펴보았던 19장 13절에 보면 다윗이 요압을 경질하고, 다윗의 친척인 아마샤를 군장, 즉 군대 장관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세바의 난이 발생하자 다윗은 이를 진압한다는 명목하에 아마사를 등용한 것입니다. 아마도 다윗은 아마사를 등용함으로써 자신의 약속을 이행함은 물론, 제어할 수 없는 세력으로 부상해 가던 요압을 견제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아마사 등용은 큰 실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요압이 그 동안 다윗을 도와 다윗 황국 건림에 충성을 다했으며 또한 압살롬의 반란을 평정했던 그의 공로를 무시한 처사임과 동시에 반역자의 처리에 있어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청하지 못한 처사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압에 의한 아마사의 죽음 또한 예상된 것과 다름없었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이상과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실상 요압의 행위는 여러 측면에서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왕의 통치권적 행위를 거스렸음은 물론 자신의 정적을 견제하기 위해 이번에도 살인을 스스럼없이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실로 살아계신 공의의 하나님의 눈길조차 두려워하지 않은 짓이었으니 스스로 자신의 머리에 멸망의 숯불을 피운 처사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훗날 다윗은 솔로몬에게 요압 처단을 유언하였는데, 무릇 누구든 씨앗을 뿌린 대로 그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진리를 새삼 증거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온 이스라엘이 세바의 충동질에 단번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다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이 건달 세바의 충동질에 단번에 넘어갔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마귀에게 조종당한 가짜 감정들입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기들의 흥분된 감정이 마귀가 조종한 가짜 감정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마귀에게 조종되어 갑자기 다윗은 벨리알처럼 보이고, 세바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인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마귀의 장난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밖에서부터 나를 유혹하는 자들을 조심해야 하지만, 이처럼 내 안에서 내 생각과 내 감정을 충동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거짓 감정을 분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 없이 흥분된 감정을 따라가다가는 이들처럼 멸망의 길을 자기 스스로 가는 자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 올바른 분별력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귀의 어떠한 충동질에도 굳굳하게 신앙을 지켜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41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