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5:1-16 고난에 대처하는 방법 찬송:303장
5:1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5:2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5:3 내가 미련한 자가 뿌리 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5:4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고 성문에서 억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5:5 그가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덫에 걸린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5:6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5:7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5:8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5:9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5:10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5:11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5:12 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꺾으사 그들의 손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시며
5:13 지혜로운 자가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하시며 간교한 자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므로
5:14 그들은 낮에도 어두움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5:15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강한 자의 칼과 그 입에서, 또한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시나니
5:16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희망이 있고 악행이 스스로 입을 다무느니라
계속해서 엘리바스의 변론입니다.
- 1-7절은 악한 인생이 피할 수 없는 고난에 대해 엘리바스가 변론합니다.
욥이 당하는 고난의 원인이 죄에 있음을 시사하던 엘리바스는, 본장에 이르러서는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하며 직접적으로 욥의 고난을 죄에 대한 징계로 언급하면서 즉시 하나님께로 돌이킴으로써 회복의 은총을 사모하라고 촉구합니다.
이렇게 볼 때 4장과 본장은 전체적으로 그 논리 자체는 변함이 없으면서도 그 강조점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4장에서는 자신은 무고한데도 고난을 받고 있다는 욥의 항변을 무너뜨리기 위해 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고난의 성격이 강조된 반면, 본장에서는 욥이 죄의 결과로 고난 받고 있다는 전제하에 욥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들이킴으로써 회복의 은혜를 입으라고 촉구하는 내용이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하의 본문에서 엘리바스는 자신의 주관적 체험을 실례로 들어 하나님께 불평하는 자의 어리석음과 그 결과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욥의 고난에 대한 불평이 하나님 앞에 큰 죄악임을 1-5절에서 말하고, 6,7절에서 계속해서 고난은 결코 이유 없이 임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함으로써 욥이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원인 모를 고난으로 여기며 탄식하는 사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는 직접적으로 욥을 악하다고 규정하며 욥의 고난이 그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 내용상 실제로는 욥의 고난을 그의 죄의 결과로 인해 주어진 재앙이라고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의 원인을 죄로 보는 엘리바스의 논지는 일면 타당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인류가 고난을 당한다는 것은 보편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이러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진리 자체를 인과 응보론으로 이해하여 욥의 특수한 경우에 적용시킨 데 오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나아가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섭리의 일면, 즉 죄에 대해서 철저히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만을 강조하고 죄인에 대해 온유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섭리의 측면을 간과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획일적으로 제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분명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그 행위에 따라 엄정하게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최종적이고 종말론적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실의 고난을 모두 특수한 개인적 죄에 대한 보응으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의 이러한 말을 통해서 결국은 욥에게 더욱 큰 고통만을 가중시킬 것입니다.
- 8-16절은 회개를 촉구하는 엘리바스의 말입니다.
욥의 고난에 대한 해결책으로 옵으로 하여금 의뢰 하는 자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순응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의뢰하라고 촉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엘리바스가 그랬던 것처럼, 고난당하는 형제와 이웃에 대한 섣부른 훈계나 충고는 오히려 상대에게 더 큰 고통을 가중시킬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엘리바스와 같이 상대방의 처지에는 관계없이 일반적 원리 원칙에만 의존하여 상대를 평가하거나 그에 대한 처방을 내리는 실수를 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킬 뿐, 상대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상대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며 위로하려는 태도를 우선 적으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어려움에 있는 사람에게 뭐가 어떻고 저떻고 하며 평가를 하거나 처방을 하려 하지 말고 그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주고 위로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38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