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15:1-16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들었느냐 찬송:400장
15: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15:2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냐
15:3 어찌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15:4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15:5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15:6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
15:7 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15:8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15:9 네가 아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깨달은 것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15:10 우리 중에는 머리가 흰 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
15:11 하나님의 위로와 은밀하게 하시는 말씀이 네게 작은 것이냐
15:12 어찌하여 네 마음에 불만스러워하며 네 눈을 번뜩거리며
15:13 네 영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
15:14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15:15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15:16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
오늘 말씀은 엘리바스의 2차 변론의 시작의 말씀입니다.
욥의 변론을 들은 욥의 세 친구 중에 먼저 엘리바스가 2차로 변론을 합니다. 그 내용은 1차 변론 때의 편협되고 인과응보론적인 고난 관에서 달라진 것이 없이 내용이 반복되며 욥을 향해 더욱 격앙된 감정으로 신랄하고 직접적인 비난과 정죄만이 그 도를 더해 감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첫 번째 논쟁에서는 먼저 욥이 전에는 경건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았다고 말하며 부드럽게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두 번째 논쟁에서는 처음 시작부터 욥의 주장을 모두 거부하는 거친 분노의 언어로 시작합니다.
2,3절에 보면, 엘리바스가 혈기를 부리며 헛된 말을 쏟아낸다고 욥을 비난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마치 농작물을 말라죽게 하는 사막에서 부는 동풍처럼 파괴적이고 쓸모없는 말만 쏟아내고 있다고 공격합니다. 그리고 욥이 쓸모없는 헛된 말을 혈기를 부리며 헛된 말로 논쟁이나 일삼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무익한 말로 다투려고만 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7,8절을 보면, 욥 혼자 경건하고 지혜로운 척한다고 비난합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의 죄 때문에 이 어려움이 왔다고 하자 욥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남을 함부로 죄인으로 몰아가지 말라고 한 말에 엘리바스는 이 말을 받아서 욥이 자기만 혼자 똑똑한 척한다고 말하며 혼자 경건하고 혼자만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척한다고 욥을 비난합니다.
이와 같은 엘리바스의 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잘못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먼저 욥의 고통의 절규를 혈기라고 몰아가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아파서 외치는 이 소리들을 욥의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매사에 혈기를 부리는 자와 상처로 인하여 아파하며 외치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자들은 오히려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어야 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욥의 말 중에 한 부분을 강조하고 왜곡하여 공격합니다. 과거 자기가 아무리 깨끗하게 살려 애를 썼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겸손하게 한 욥의 말 중에서 엘리바스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말 한 마디만 딱 떼어서 욥이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죄인이라고 말했다고 공격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여 공격해서는 안됩니다.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잘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리바스는 “이렇게 재앙을 당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 무슨 죄를 범한 것이 분명하다”하고 추정하여 욥을 공격합니다. 우리가 늘 조심해야 할 것중에 하나는 지레짐작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을 따라 지레짐작해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에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라는 지레짐작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우리는 결코 지레짐작해서 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는 고난 당한다는 이유로 욥에게 계속해서 죄를 추궁하는 엘리바스를 볼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의 논리대로 한다면 그가 평안한 가운데 있는 것은 그에게는 죄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엘리바스는 거룩한 자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은 거룩하기에 이런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욥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금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지레짐작하지 말고, 나에 대하여는 엄격하고 남에 대하여는 부드러운 판단을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반대로 나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다름 사람에 대해서는 엄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에 대해서 엄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45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