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16:11-22 하늘에 계신 나의 증인 찬송:338장

16:11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16:12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16:13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16:14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 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16:15 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16:16 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

16:17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16:18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16: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16: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16:21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16:22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어제 말씀에 이어 욥이 하나님께 탄식을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1. 11- 17절까지는 욥이 하나님의 쏘신 화살에 자신의 내장까지 땅에 모두 쏟아졌다는 탄식합니다.

욥은 주께서 평안히 살던 자신의 목덜미를 잡고 내던져서 부서뜨리시고, 자신을 과녁으로 삼아 화살을 사정없이 그 화살들이 욥의 허리를 뚫고 들어와 욥의 내장들을 땅에 모두 쏟아지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욥을 치고 또 다시 치며, 계속해서 용사같이 달려드시니 이제 욥의 눈꺼풀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욥의 절규의 탄식을 통해서 고통을 받는 자들의 아픔을 헤아려 봅니다. 혹시 주변에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이가 없는지 살펴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18-22절은, 하나님만 바라보겠다고 고백하는 욥에 대한 말씀입니다.

욥은 자신이 왜 이런 재앙을 당해야만 하는지 그 까닭이라도 말해달라고 울고 또 울면서 하나님께 빌고 간청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침묵만 하십니다.

이에 욥은 땅을 향하여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하고 호소합니다.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하나님께 대신 말해달라고 땅에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욥은 땅에게 “나의 부르짖는 소리가 쉴 곳을 잡지 못하게 하라”하고 호소합니다. 욥이 부르짖는 소리가 마치 메아리처럼 땅에서 계속 울려 하늘에까지 닿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니 대신 땅에게 호소하여 말씀하시지 않는 하나님께 그 서운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내 부르짖는 소리가 쉴 곳을 잡지 못하게 하라’는 것을 공동번역에서는 ‘애타게 정의를 찾는 내 부르짖음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게 하라’하고 번역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복을 받을 자가 복을 받고 벌을 받을 자가 벌을 받는 것이 정의입니다. 둘째는, 그 공동체에서 가장 연약한 자가 아무런 염려 없이 당당하게 사는 것이 정의입니다. 그런데 지금 욥은 이 두 가지 정의가 다 왜곡된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욥은 이 벌을 받을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욥은 가장 흉악한 죄를 지은 자가 받는 벌을 받고 있으니 정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재앙을 만나 그 사회에서 가장 연약한 자가 되었는데, 세상은 그를 사람 취급도 해주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정의롭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이 억울함을 땅에서 호소하며 그가 부르짖는 소리가 땅에서 계속 울려서 하나님의 귀에까지 들리게 하라고 탄식하며 호소하는 것입니다.

20,21절을 보면 욥은 오직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욥은 단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저 자신이 겪는 고통을 불쌍히 여기며 위로하는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조차 계속해서 욥에게 험악한 소리만 하니 욥은 이제 이 세상에서 그가 의지할 자는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 욥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중재자를 속히 보내달라고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의지할 곳이 단 한 곳도 없다고 느낄 때 어떤 생각을 합니까? 힘들고 어려운 고통 속에 빠져 있는데 의지할 곳은 하나 없고, 속 시원히 내 답답한 심정을 말할 사람조차 없다고 생각될 때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우리에게는 나를 위해 독생자까지 바치시며 나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욥이 말한 것과 같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절대 고독 속에 있을지라도 “내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외에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하면서 주께 부르짖는 자가 되기 바랍니다. 기도를 멈추는 순간 절망이 나를 점령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고난 중에 빠진 욥이 친구들로부터 아무런 위로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질책만을 당하자, 그는 세상 친구의 조롱에 실망치 않고 그의 눈을 하나님께로 향하였습니다. 여기서 ‘향하다’는 ‘어떤 것을 지향하다’, ‘어떤 곳을 향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 말은 나의 관심과 애정, 나의 지 ․정 ․의가 계속적으로 어떤 것을 향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은 떨어져 있어도 상대방을 생각하고, 그가 좋아하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는 성도는 언제나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모두가 욥처럼 고통 중에 있으면서 의지할 곳도 하나 없다고 여겨질 때에도 주께서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을 향하여 나의 눈을 들고 주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3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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