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33:19-33 우리를 중보 하시는 분 찬송:292장
33:19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33:20 그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그의 마음은 별미를 싫어하며
33:21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33:22 그의 마음은 구덩이에, 그의 생명은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
33:23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33:24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33:25 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
33: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33:27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범죄하여 옳은 것을 그르쳤으나 내게 무익하였구나
33:28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33:29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3:30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33:31 욥이여 내 말을 귀담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33:32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대를 의롭다 하리니 그대는 말하라
33:33 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그대를 가르치리라
오늘 말씀도 엘리후의 1차 변론의 계속되는 내용입니다.
엘리후는 욥이 무죄함을 주장하며 자신의 고난받음이 부당하다고 불평한 것은 위대하신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한 일임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욥이 그렇듯 의롭지 못한 언행을 하게 된 까닭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의로운 섭리와 행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측면에서 고난을 통해 의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와는 아주 다른 방법으로 욥에게 충고를 합니다. 세 친구들은 욥에게 내려진 고난이 하나님의 심판의 징벌이라고 말했으나, 엘리후는 이 고통이 하나님을 더욱 분명하게 발견하게 하는 교훈적인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엘리후 역시 욥이 재앙을 당한 원인을 죄로 지적하고 있기는 하지만, 엘리후는 고통의 교훈적인 가치를 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엘리후는 그 고통의 과정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고 구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속량하시고 그 죄의 구덩이에서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를 죄와 시련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며 노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욥이 그 고통 속에서 때로는 좌절도 하고, 때로는 절규를 하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을 보아 왔습니다. 이처럼 어떤 시련이 있든, 어떤 아픔이 있든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끝까지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이런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23절부터 보면,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중재자를 보내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욥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의 중재자를 보내주실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일천 명의 천사들 가운데 하나를 보내셔서 욥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줄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래서 욥이 천사가 말하는 대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를 죄의 구덩이에서 건지시고, “내가 이미 그를 위한 대속물을 얻었다”하고 말씀하실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의 몸은 어린아이의 몸처럼 새롭게 되고, 청년 같은 젊음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은 엘리후가 예언한 대로, 그가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했던 것을 회개한 후에 그의 살결은 어린아이와 같고, 그의 모든 것이 재앙을 당하기 이전의 두 배나 복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에 비하여 건전한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후의 실수는 욥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엘리후가 처음 말을 시작할 때는 욥에게 재난을 당했다는 이유로 기죽지 말라 했으나, 그 역시 욥의 세 친구들처럼, 욥이 재앙을 당했다는 이유로 욥을 지혜도 없는 형편없는 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내가 욥을 가르치겠다든지, 욥의 말을 듣고 화가 나가 참을 수가 없었다든지 하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만일 욥이 자기가 받아들일 만한 말을 하면 욥이 의롭다는 것을 자기가 인정해 주겠다고까지 말합니다.
엘리후가 누구이기에 욥이 의로운 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말고 한다는 것입니까? 아마도 엘리후는 재앙을 당하기 이전에 욥이 어떤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이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의 욥의 모습을 모르므로 엘리후는 욥이 한 말에 대해서만 그 잘못을 지적합니다. 이전의 욥의 상태를 모르니 엘리후는 지금 재앙을 당한 욥의 모습만 보고 욥을 한참 모자라는 사람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우리가 사람을 첫인상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기억하고, 사람을 판단하는데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내 말 한마디에 상대방은 큰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오늘 말씀 26절을 보면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라고 말씀 합니다.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 은혜를 입어야 받아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 날마다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생활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2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