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4:11-17 비방하지 말라 310장

4: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4: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4: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4: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오늘 말씀은, 성도들이 서로 비방하지 말아야 할 것과 허망한 말들을 하지 말 것을 말씀합니다.

  1. 11,12절은 성도 상호간의 비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도간의 다툼에 대해 경계하고 다툼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 앞 단락에 이어 본문에서는 교회 공동체에 주는 두번째 교훈으로 성도간에 비방을 금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권고는 다툼을 금할 것을 권고하는 전단락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툼 중에는 으레 상대에 대한 비방이 따르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야고보는 성도간에 비방하는 것을 금지 한 후에 성도들이 피차 비방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밝히는데 그것은 첫째로, 11절에,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율법은 분명하게 ‘형제를 사랑하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이는 형제가 비록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부족한 것이 있다 할지라도 그 부족한 면까지 사랑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12절에 보면,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을 판단하고 그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는 지극히 교만한 행위라 아니할 수 없으며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에 우리가 혹시 형제를 사랑하기보다 형제의 단점을 꼬집어 비방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형제 사랑하기를 마치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기 위해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1. 13-17절은 성도의 세속적인 삶을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도 상호간의 비방을 금지하는 권고에 이어 본문은 교회 공동체에 줄 세번째 교훈으로, 하나님의 뜻을 도외시하고 자행자지하는 세속적 삶을 경계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야고보는 먼저 13절에 보면, 수신자들의 물질 중심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삶을 지적합니다. 그 주 대상은 상업하는 신앙인들인데 그들은 온통 자신들의 계획에 확신을 가지고 장사를 합니다. 그래서 앞날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일 년 앞의 계획도 마련하며 아무런 장애 없이 계속해서 부를 쌓을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스스로 만족하고 높이면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힌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비록 상인만을 예를 들어 그들의 잘못된 삶의 태도를 경계했지만 저자의 의도는 이 서신의 많은 수신자들이 바로 이러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안개에 비유하여 하나님 없이 세속적 가치관에 따라 사는 자들의 삶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허무한가를 말씀합니다. 즉 앞절에서 언급된 상인들과 같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모든 신앙인들은 자신들의 안목에 의해서 미래의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전혀 고려치 않은 계획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육신적 소망은 그들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안개’는 인생이 짧고 허무하며 불안정한 상태인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 모두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삶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삶을 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임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 15절에 보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의지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며,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의 수완이나 재주 등만을 믿고 자행자지하는 것은 악이요 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은 교회 공동체에 속한 모든 성도들의 삶의 자세는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유익을 좇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주의 뜻을 좇아 행하는 것이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성도들에게는 하나님 뜻이 자신의 삶과 관련한 최고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하는 일의 성패 여부는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세상적인 가치관에 따라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만족만을 위하여 산다면 그 인생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사람이 계획을 세운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능히 그것을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도들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즉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않는다면 그것은 성도로서의 본분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마땅히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내일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추측할 수는 있으나 명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이 사실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겸손해 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염려하기도 하고 방종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방종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은 모른다. 오늘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고린도 교회에도 이렇게 방종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는 거짓 교훈에 속아 내일에는 희망이 없다고 여기고 지금을 즐기는 쾌락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내일이 있고 내일의 소망도 있습니다. 먼 장래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고 모든 내일에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한 평강이 있습니다.

섭리가 무엇입니까? 전통적으로 섭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협력과 통치를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좌절하거나 방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보호하시고 우리를 섭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내일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오늘을 성실하게 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내일을 가꾸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에 내 계획과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17절에서 지금까지 말한 모든 권면의 결론으로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따르는 생활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뜻을 행할 줄 알면서도 세상의 허탄한 것을 따르며 세상과 벗된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행함이 없는 생활을 한다면 그 자체가 죄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진행된다는 믿음 속에서 내일에도 계속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으로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44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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