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22-39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270장

2: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2: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2: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2: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2: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2: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2: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정결 의식을 행하기 위해 올라오신 내용의 말씀입니다.

  1. 22-27절은 아기 예수의 정결 의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내아이가 나면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식이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난지 제 팔 일째 되는 날에, 모세의 율법과 그 백성들의 관례를 좇아 할례를 받으셨습니다.

한편 예수께서 할례를 받으심은, 그가 육체로는 여자에게서 나시고 또 율법 아래에서 난 유대인이란 사실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증거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22절에 보면,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말씀 합니다. 여기서 ‘결례의 날’이란, 아이를 낳음으로 부정하게 된 산모들이 정결 의식을 행하는 날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자녀를 낳은 산모는 누구든지 부정한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정 기간 동안 외출 및 성전 예배를 일체 금지시켰고, 산모는 이 기간이 지나야 비로소 정결 예식을 통해 부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정결 예식 때에는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는데 번제는 출산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표시였으며, 속죄제는 부정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3절에 보면,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라고 말씀 합니다. 율법은 이스라엘에서 난 모든 초태생은 하나님께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당시 하나님의 장자 재앙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요셉과 마리아의 장자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그리고 24절에,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제물은 마리아의 정결예식에 사용될 예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래 해산한 여인이 정결 예식 때 드리는 예물은, 번제로 어린 양 한 마리와 속죄제로 비둘기 한 마리였습니다. 다만 매우 극빈하여 어린 양을 번제로 바칠 수 없는 경우에는 비둘기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요셉과 마리아가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율법아래 태어나신 분이시므로 그의 생애는 율법을 지키시고 율법의 모범을 보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28-35절은 시므온의 찬양의 내용입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시므온의 신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아니합니다. 25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라고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에 대하여 이 사람이 의롭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또 27절에 보면, 그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다고 말씀 합니다.

시므온은, 30절에 보면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찬양했습니다. 주의 구원이란, 하나님의 구원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약속하신 그 언약의 성취를 말합니다. 이처럼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인해 영적인 통찰력으로 앞으로 일어 날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미리 본 것이 됩니다.

그리고 3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유대인만이 아니라 만민, 즉 세계의 모든 민족을 위한 것임을 노래합니다.

또한 그리고 그 메시야에 대해 32절에 보면,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하며 복음의 세계적 확장과 구원의 보편성을 노래한 구절로 여기서 ‘빛’은 전혀 소망이 없이 어두움에 거하는 자들에게 구원과 생명을 가져 다 주실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종과 신분의 장벽을 뛰어 넘어 온 세계에 전파됨으로 모든 민족들이 구원 얻게 될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이는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 가운데서 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어떤 나라들보다 이스라엘을 축복하셨다는 증거가 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35절에 보면,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칼로 마음을 찌르듯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마리아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될 것인지 분명하게 암시해 주고 있는 예언적 말씀입니다.

  1. 36-39절은 안나의 감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안나는 84년간이나 과부로 지낸 여인으로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므로 하나님을 섬겨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메시야를 보여주시고 참 소망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그가 이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서 감사했다고 말씀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시므온과 안나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경건하며 기도생활을 해온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시고 또 그들에게 메시야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하신 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오늘 우리는 평생을 주님을 기다려 왔던 시므온의 모습을 통해서, 이제 재림의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바른 자세를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그는 의롭고 경건함으로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에 대하여 성경은 오직 그가 의롭고 경건한 자라는 말 외에는 더 이상의 언급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사가 사람의 출신, 가문, 위치, 재력에 두기보다 오히려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두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관심사는 업적이나 외부적인 어떤 것보다도 주님과의 바른 관계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이 땅을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우리 주님을 만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시므온은 평생토록 소망을 두고 기다렸습니다. 당시 메시아의 소망이 이스라엘 중에서 거의 식어가고 있을 때에 시므온은 의심치 않고 기다렸습니다. 이처럼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큰 관심이 기울이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욕심을 취하려고 혈안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이 때에 우리는 시므온처럼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 재림의 주님을 경건한 마음과 행실로,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가치 있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17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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