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4:1-13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70장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4: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4: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4: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4: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4: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4: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4: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4: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4: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4: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4: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오늘 말씀은 시험받으신 예수님께서 시험을 이기신 내용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시험을 받으실만한 아무런 조건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누가 그를 시험할 자격이 있을 것입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 분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그 분을 시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까? 그런데도 성경은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일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교훈해 주시는 바가 큰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왜 시험을 받으셔야 했나?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왜 필요한 것인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는 말씀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성령께서도 예수님과 함께 동역 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육신으로 낮아지신 예수님께서 그의 사역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권능의 행사가 필요하십니다. 인성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이 같은 하나님으로부터의 권능의 행사에 있어서 성령의 동역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하는 충만이란 말은 ‘가득하다,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로 사역하시기에 충분한 성령의 임재하심, 성령의 능력의 부여하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부터 끊임없이 이 같은 능력을 부여받으시므로 그의 사역을 완벽하게 수행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직적 체험하시고자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기 위함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시험을 도우시고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기심을 받을 수 있으며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분으로, 아담의 실패를 회복하심에 마귀의 시험을 이기셔야 했으며 둘째 사람으로 반드시 마귀의 시험의 승리자가 되셔야 했습니다. 처음 아담은 에덴에서 마귀의 시험에 넘어졌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아담 안에서 사망을 유산으로 넘겨받았습니다.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아담의 실패를 회복하셔야 합니다. 아담이 실패한 것을 예수님이 회복하시려면 이기셔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둘째 사람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을 창조하셔야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마귀의 시험을 이기셔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받으신 세가지 시험을 살펴 본다면,
마귀의 공격은 간교하기 때문에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형편과 처지를 부단히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틈새만 보이면 여지없이 공격을 가해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시험을 받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찾아왔습니다. 사십 일간의 금식이 끝난 직후에 예수님을 시험으로 넘어지게 하려고 날카로운 공격을 시도한 것입니다.
첫째로, 마귀는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했습니다. 시험이란 예수님으로 넘어지게 하려는 마귀의 실험이기 때문에 이 같은 마귀의 말은 동정이나 배 고픔을 면해 보라는 뜻에서 준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이 같은 간계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반격을 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심으로 마귀의 첫 번째 시도를 물리치셨습니다.
마귀는 두 번째 시험을 시도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권세와 영광을 네게 주리라”고 유혹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왕으로 오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는 왕의 영광을 이 세상에 있는 권세와 영광에 결부시켜 그 길을 택하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경배하라고 하는 마귀의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귀는 다시 한번 참담한 실패를 당했습니다. 그 옛날에 에덴에서 아담을 유혹했을 때 써먹었던 그의 솜씨로서는 도저히 당해낼 도리가 없었습니다.
마귀는 이번에는 마지막 시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유혹을 시도했습니다.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 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엉뚱하게 시편에 있는 말씀과 결부시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유혹을 물리칠 수 없도록 시도했습니다. 마귀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도용한 것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시험케 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직각 마귀의 간교함을 간파하시고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이 세가지 시험을 한 마귀의 말에는, 인간적인 합리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찾게 하는 것, 세상 영광을 보여 주는 것, 하나님을 시험케 하는 일 등,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거나 진리에 눈이 어둡고 육신의 일에 눈을 돌리는 한, 이 같은 마귀의 유혹에 걸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성령의 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마귀는 이기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늘 마귀의 시험을 대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지금도 이 마귀는 우리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마귀의 꾀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먼저 철저하게 말씀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주님도 철저하게 말씀으로 대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옳지 않으면 당장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그 말씀에 서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늘 기도에 전적으로 힘써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은 금식 기도입니다. 우리도 기도로 늘 무장해 있어야 함니다. 주께서 하신말씀 기억하시나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기도하면 시험에 안 든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기도 안하면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여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분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무장하고, 기도로 깨어 있어서 마귀의 어떤 시험에도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19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