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3:10-2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들 찬송:393장

3: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3: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3: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3: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3: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3: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3: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3:18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3:19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3:20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세례요한이 곧 메시야가 오실 것을 선언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1. 10-14절은 세례 요한의 메시지입니다.

어제 말씀에 이어 세례요한의 책망을 듣고 있던 많은 무리들이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고 물었습니다.

이에 세례요한은 11절에 보면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는 자기의 소유를 가난한 자들과 나눌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세리들도 세례요한에게 와서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세례요한이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합니다. 즉 세례 요한은 합당한 회개의 열매가 무엇인지를 요구하는 세리들의 질문에 대해 합당한 세금 징수를 요구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 할 것은 당시 죄인의 상징인 이 세리들에 대해서 진정한 회개의 표시로서, 세리의 직업 자체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삶의 변화를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각 개인이 처해 있는 자리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고 정의롭게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에, 이번에는 군인들이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세례요한은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말합니다. 이 군인들은 아마도 일종의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하며 세리들이 세금을 징수하는 것을 도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고문하여 돈을 빼앗음은 물론 심지어 개인적으로 돈을 강탈하기도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요한은 협박이나 허위 명목으로 백성들의 재산을 갈취하지 말고 자신들의 봉급으로 만족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합당한 열매였던 것입니다.

  1. 15-18절로 세례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증거

세례 요한의 사역은 백성들에게 혹시 그가 메시야가 아닌가 심중에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요한은 이를 알고 자신이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요한 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다, 그는 더 나은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다, 그는 심판자이시다’하며 예수님의 사역은 요한의 사역과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요한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 예수님에 대한 증거와 더불어 세례 요한의 겸손과 정체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오시는 분의 샌들의 끈을 푸는 비천한 일을 행하는데도 적합하지 못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인데 반해 요한은 물로 세례를 줍니다는데 있습니다. 여기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줍니다는 것은 동일한 성령 세례를 의미하지만 거기에는 두 가지의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가 씻겨지고 정결케 되지만, 거절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로 영접될 것이지만 불신자는 꺼지지 않는 불 즉, 지옥에 던져질 것입니다. 요한의 모든 메시지는 결국 예수님에 대한 좋은 소식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영광의 길이 아니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길입니다.

  1. 19-22은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 준비입니다.

이 부분은 두 가지로 나뉘어 지는데 하나는 세례 요한의 사역의 마지막으로 감옥에 갇힌 사건과 더불어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세례 요한은 유대 정치 지도자의 도덕적인 면을 도전하여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헤롯 안디바가 자신의 동생 헤롯 빌립1세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자 요한이 그것을 책망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행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됩니다. 첫째는 두 헤롯 모두 이혼을 하였습니다는 것이요, 두 번째는 동생의 이혼한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악을 행한 것에 더하여 더 큰 악은 요한을 감옥에 넣어 무력으로 그의 입을 막은데 있습니다. 요한은 헤로디아의 분노로 결국 감옥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의 감옥 생활은 그의 사역의 마지막을 가져왔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고 계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의 세례를 받으셨고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그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들이라고 선언하신 것은 의미심장하다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오늘 말씀에 보면 여러 무리들이 세례요한에게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세례요한은 그들이 실제 삶에서 변화 되어야 할 것들을 말해 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질문하는 그들에게 직업을 바꾸라든가 세상의 구조, 권력의 구조를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 깊은 곳에 회개의 열매가 있어지기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믿음에는 오해가 많습니다. 첫째,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신앙, 또는 관념적인 신앙을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보다 구체적으로 현실적인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역시 이와 같이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변화된 삶을 살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걸맞는 생활을 마땅히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실제의 우리의 삶에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39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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