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6:12-26 네가지 복과 네가지 화 263장

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6: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6: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6: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6: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6: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6: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6: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6: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6: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6: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은 제자들을 택하신 내용과 네가지 복과 네가지 화에 대해서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1. 12-16절은 열두 제자를 택하여 사도로 세우신 내용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중 12사도를 택하신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뒤를 이어 복음사역의 주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중심으로 그의 공생애를 지내셨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을 주시는 일에, 확신을 주시는 일에,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12사도들에 대한 제자 훈련은 과연 예상대로 적중하여 온 세계에 복음의 불을 지피는 일에 성공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12절에 보면, 제자들을 사도로 세우시기 전에 산에 가셔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기도하신 후에 중요한 일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어떤 일을 할 때는 즉흥적으로, 내 생각으로 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그 응답을 따라 행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17-23절은 복이 있는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누가는 본문에서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말씀을 간략히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누가의 기록은 마태가 마태복음에서 기록한 내용보다 간략하고 순서 면에서도 달라져 있는 곳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지 복은 무엇 무엇일까요?

첫째는, 20절에 보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복이라고 하신 말씀은, 세상적인 복을 말하기 보다는, 영적인 복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거나 체험할 사람들이 그의 삶 중에서 누리는 기쁨과 만족을 뜻합니다. 이와 함께 가난이란 말도 영적인 말로 풀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물질적 가난이 복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마음의 가난으로 세상의 정욕과 탐심을 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에서 벗어난 마음을 말합니다.

둘째로, 주린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입니다. 의로운 생활을 하려고 하는 뜨거운 열망입니다. 이처럼 의에 주린 자의 복으로 주님은 그들이 배부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셋째로,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는 자란 애통하는 자를 말합니다. 운다는 말은 애곡 또는 통곡함을 뜻합니다. 이 말씀은 죄에 대한 회개로 자신의 마음을 찢는 괴로움을 말합니다. 이들에게는 웃을 수 있는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죄의 은총이나 마음의 평안은 크나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넷째로, 예수님 때문에 고난 당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고난이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남겨 놓으신 일인데 이 일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이 고난은 복음 때문에 받는 고난이요,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받는 고난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받는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고 하셨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늘에서 받을 우리의 상급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1. 24-26절은 네가지 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복이 있는 자가 누군가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다음에 이와 반대적인 입장으로 화 있을 자에 대해 경종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핍박받는 자”에 대한 복에 대해 말씀하신 후, 이제 그와는 정 반대로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칭찬 받는 자”에 대한 화를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24절부터 보면, 부요한 자가 화 있다고 말씀 합니다. 부요하다는 말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세상적인 물질적 풍요를 누린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날마다 연락하며 호화롭게 지낸 한 부자의 죽음에 대하여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배부른 자가 화를 받을 것이라 말씀 합니다. 배부르다는 말은 자기 생애의 만족을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생애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노아나 롯의 때의 모든 사람들이 이 같은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들은 홍수가 나서 멸망할 때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으로 만족하는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할 때 배부른 자가 받을 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웃는 자입니다. 웃는 자란 세상의 환락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웃음은 자기 인생의 기쁨을 말하는데 이들은 그 기쁨을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나 사랑하는 생활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취미나 풍습이나 죄악된 생활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들의 인생을 성령으로 심지 않고 육신으로 심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애통함과 슬픔을 당할 것입니다.

네 번째로,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의 생애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언제나 사람들 편에 서서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님 앞에서의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생활입니다. 바울은 이런 생활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말했습니다. 구약에도 사람을 기쁘게 하는 거짓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겉으로는 둘 사이에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후자가 더 부러움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히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쪽은 영원한 천국과 행복의 길을 가게 될 것이요, 다른 쪽은 영원한 심판과 저주의 길로 가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2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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