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6:1-11 누구를 위한 안식일인가? 찬송 303장

6: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6: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6: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6: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6: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6: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6: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6: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6: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6: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6: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오늘 말씀은 안식일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대하여 논쟁하는 장면으로, 마태나 마가도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안식일과 관련하여 두 가지 논쟁이 벌어지는데요,

첫 번째 논쟁은 1-11절로,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은 것을 본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안식일에 노동한 것이라고 문제 제기하면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율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전통에 의거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예를 들어서 이런 주장을 일축하시고 율법의 근본 정신이 문자적인 법조항에 있지 아니하고 사랑에 기초된 것임을 보여 주십니다.

특히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 이라고 증거하심을 통해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창조자이며 입법자임을 보여 주는데, 그는 성부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는 성부와 함께 안식하셨으며 이제 죄로 타락한 이 세상에 영원한 안식을 주러 오신 것입니다.

결국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사랑을 실현하는 날로,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유익을 위한 규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논쟁은, 6-11절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오른손 마른 사람의 병을 고치신 것에 대하여 바리새인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일어났습니다. 가버나움 사역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날이 비록 안식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른손 마른 자를 고치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은 인자로 오셔서 안식일의 근본 목적인 인간 사랑을 성취하신 것일 뿐만 아니라, 안식일 준수의 바른 의미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의 소극적인 면을 확대 해석하여 인간의 선한 행위마저 제한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강조하여 적극적 선을 행할 것을 요구하신것입니다. 즉 안식일에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의 영광과 형제의 유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날인 것입니다.

한편 누가가 안식일에 대한 사례를 들어 율법의 한계성을 규정한 것은, 초대 교회 당시에 있었던 유대주의자들의 율법 준수 요구에 대해 해명하며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로 하여금 형식적인 율법보다 사랑의 복음에 더욱 충실할 것을 교훈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잊어버린 율법주의자가 될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여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진실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 주님은 법에 매여 사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신’에 의하여 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법보다 우선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구약의 안식일이 지금의 주일은 아니지만 정신과 본질적인 의미가 같기에 우리가 어떻게 주일을 지킬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첫째는, 그 분을 경배함으로 참된 안식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날에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과 같이 좋은 환경 가운데 있고 물질이 있다고 해서 참된 안식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안식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날 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참된 쉼은 주님을 만나 그분의 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 하나님 내가 당신의 품에 돌아와 쉼을 얻기까지 내 마음에 참된 쉼은 없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속박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자유와 안식을 주시기 위해 주신 복된 날입니다.

둘째는, 영혼구원과 선행과 구제를 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주일을 쉬는 날로만 보내지 마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날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하지 않고 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나아가 선을 행하는 날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고 미래의 안식을 소망하며 오늘 안식을 누리는 날이며 평소에 하지 못했던 선행과 구제를 하는 날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참된 쉼을 누리며 손 마른 사람처럼 마른 것들이 하나님의 생기로 회복되는 날입니다.

주일이면,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참된 안식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4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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