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5:27-39 죄인은 사랑하시는 예수님 268장
5: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5: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5: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5: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5: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5: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5: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5: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5: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5: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5: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5: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오늘 말씀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과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아야 함을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 27-32절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전도초기에 그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주님의 여러 가지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은 주님이 세관 앞을 지나시다가 레위라 하는 세리를 부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레위를 보시고 나를 좇으라고 명하셨습니다. 레위한 사람은 세관에 근무하는 세리요 그가 부르심을 받은 후에 마태란 이름이 주어졌으며 마태복음을 기록한 제가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 28절에 보면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고 말씀 합니다.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직장도 버리고 세리의 좋은 자리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레위는 예수를 위해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레위가 베푼 이 잔치에서 우리는 레위의 기쁨과 감사를 알 수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기쁨, 구원을 받은 기쁨은 이처럼 주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여 큰 잔치를 베푸는 감사와 봉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위가 베푼 잔치에는 세리로 근무하는 레위의 많은 친구들도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치자리를 엿보고 있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뒤를 따라 다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30절에 보면, 그들은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고 비방한 것입니다. 당시 세리는 죄인으로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31,32절에 보면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서 의사란 바로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자란 스스로가 자신들에게는 죄가 없다고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 무리들은 바로 자신들을 의인이라고 믿고 있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죄인이란, 병든 자를 말합니다. 병든 자는 자신의 병을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죄인이란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통회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 죄의 비참함을 알고 마음을 찢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병든 자가 의원의 치료를 받듯이 죄인들이 죄인의 의원이 되시는 예수님의 치료를 받을 때 놀라운 치유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의원 되신 예수님께서 그의 죄를 사유해 주십니다. 사망에서 건져내 주십니다.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 33-39절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야 한다고 말씀한 내용입니다.
33절에 보면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여기서 ‘그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나타나 있지 않지만, 마9:14에 의하면 ‘요한의 제자들’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 절의 상황으로 볼 때, 예수님께 질문을 한 사람들이 단지 요한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도 자주 금식을 했는 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금식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은 대답은, 34,35절에 보면,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고 하시며,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고 말씀 합니다. 즉 지금은 결혼 잔치와 같은 기쁨과 행복의 순간이기 때문에 금식하며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때, 그리스도의 죽음을 말합니다. 이때는 제자들 또한 애통하는 마음을 갖고 겸비하게 살 것 이라는 사실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38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새 포도주란 새 언약, 즉 복음을 말합니다. 묵은 포도주란 율법을 말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존할 수 있는 것 같이 역동적 생명이신 예수와 그 복음의 수용을 위해선 이미 고착화된 낡은 형식주의적 신앙 형태가 아닌 신선한 새 부대 즉 근본적으로 변화된 새 심령과 새로운 신앙 형태가 요구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오늘 예수님께서 레위를 부르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셨다는 것은? 단순히 그냥 쳐다 봤다는게 아니라 ‘주의 깊게 관찰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세리였던 레위를 부르셨습니다.
그 당시 세리는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 쓰레기로 취급했습니다. 민족의 원수인 로마에 비리 붙어서 동족을 착취하는 매국노로 봤습니다. 그래서 세리는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기피하는 기피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일부러 보셨습니다.
복음주의 신학자인 ‘월리엄 바클레이’는 이 구절을 이렇게 주석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였던 레위 안에서 위대한 전도자 마태를 보았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 그 사람이 바로 이 세리인 레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람을 보실 때 지금 현재의 모습을 보시는게 아니라 그 사람이 예수를 만나 변화되고 난 이후, 정말 하나님께 놀랍도록 쓰임받게 될 가능성을 보시는 겁니다. 시몬에게서 반석과 같은 베드로의 모습을 보신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해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부족해고 비판하거나, 업신 여기지 말고, 그 사람도 장차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잘 다듬어지고, 길들여지기만 하면 놀랍도록 쓰임받을 것으로 여기고, 예수님의 눈을 가지고 내 주변의 사람을 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26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