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6:39-49 영적 소경에 대한 말씀과 나무의 열매 176장

6: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6: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6: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6: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6: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6: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6: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6: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영적 소경에 대한 말씀과 나무의 열매에 대한 말씀입니다.

  1. 39-42절은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라고 말씀 합니다.

우리가 영적 소경이 되면 다른 사람까지 잘못된 길로 빠뜨리게 하고 말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을 선생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영적인 소경이므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교훈이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선생으로 비유하시고 우리로 그 제자로 비유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로 주님보다 더 높아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된다면 주님과 같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와 같이 되기를 끊임없이 힘쓴다면 우리도 주님과 같은 영광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들보와 티의 비유로, 형제를 비판하거나 정죄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셨습니다. 티는 적은 먼지에 불과하지만 들보는 대들보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보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잘못만을 지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의 잘못을 보기 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43-49절은 나무와 열매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무와 열매는 서로 간에 어쩔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나무이든 그 나무는 반드시 그 나무의 열매를 맺게 마련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변화를 가져 올 수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면에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인간은 죄인들인데 이 죄인들이 맺을 수 있는 열매란 사람이란 사실입니다. 다른 또 하나는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다면 그 사람의 나무에서 맺을 수 있는 열매란 사망이나 죄악의 열매인 것이 아니라 생명과 의의 열매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무를 열매로 안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입니다. 나무란 어떤 경우이든 열매를 속일 수 없는데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택하셨기 때문에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원래가 가시나무였고 찔레나무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은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나무로 만드셔서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시려는데 있습니다.

열매는 물론 겉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열매를 맺는 근원지는 겉이 아닙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낸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쌓은 선이란 심령의 변화를 말하며 이 심령은 곧 좋은 땅을 가리킵니다. 심령의 변화는 새로운 생명이 그 마음에 들어왔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습니다. 말씀이 밭으로 표현된 심령 속에 떨어졌을 때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땅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의 깨달음이 있어야 좋은 열매, 곧 말씀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낸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선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맺는 열매는 보이는 것과는 달리 늘 하나님 앞에 악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책망하시고 화를 선언하신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의 마음의 악을 외식으로 선하게 꾸미려 했지만 불꽃같으신 예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그 마음이 선하든 그 마음이 악하든 그것은 외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지 뒤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46절에 보면, 입으로는 주님을 섬기면서 그의 행실로는 불순종하는 일이 우리 주님 앞에 얼마나 가증한 일인가에 대하여 경종하셨습니다. 입으로 주여주여 하는 자에 대하여 그들의 신앙이 결국은 무너질 것임을 경종하셨습니다. 입으로 주여주여 한다고 좋은 신앙이 아닙니다. 입으로 주여주여를 외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들어간다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순종하는 자와 불순종하는 자와의 차이에 대하여 그 결과의 엄청남을 하나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집은 큰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힐 때라도 능히 요동치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지은 집 같아서 탁류가 부딪힐 때 그 집의 무너짐이 심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애에는 큰물이나 탁류로 비유된 환난이나 시험의 때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때 사람의 참 믿음이 나타난다고 하신 것입니다. 큰물이나 탁류에 넘어지는 신앙, 그 탁류와 함께 흘러 내려가는 신앙은 그 마음에 쌓은 선이 없기 때문이며 그의 생애에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오직 순종의 믿음만이 승리합니다. 순종하는 믿음만이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들 앞에는 언제인가 무서운 불같은 환난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때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역사가 옵니다. 이때 믿음으로 순종하는 성도들만이 흰옷을 입고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 바른 믿음과 그 믿음에서 나오는 신실한 열매를 맺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2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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