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2:22-34 오직 그의 나라를 구하라 찬송:289장
12: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12: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12: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12: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12: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12: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12: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12: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12: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12: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12: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오늘 말씀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 22-28절은 목숨과 몸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위하여 염려치 말일에 대하여 주님은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음식의 염려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며 의복의 염려는 결국 자기 육신을 죽이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까마귀의 경우를 들어서 교훈 하시기를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하셨습니다. 까마귀가 자기 양식을 위하여 농사를 짓는 일이 없습니다. 또 양식을 보관하는 창고도 없지만 하나님이 그 까마귀를 기르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이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온 세상을 주고도 능히 바꿀 수 없이 귀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처럼 중하고 값진 우리들이거늘 어찌 그까짓 까마귀에 비교가 될 것입니까?
그러기에 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염려가 결국 탐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은 사람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하여 자연 속에서 자라나는 백합화의 경우를 예로 드셨습니다. 백합화가 자기를 꾸미기 위하여 길쌈도 하지 아니하고 짜지도 않지만 그가 입은 것이 솔로몬의 영광 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입히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한낱 들풀의 존재, 하루 있으면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조차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기늘 너희가 무엇 때문에 염려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염려하는 일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적은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염려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다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전폭적인 믿음을 가지고 의뢰하지 못하는 신앙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사람들은 그의 생활이 항상 염려로 뒤덮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알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염려를 버리고 하나님을 구하며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29-34절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히시고 먹이시기에 모든 탐심을 버리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염려는 불신과 의심에서 나옵니다. 믿음은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하면서도 과연 하나님은 이 일에 응답해 주실까? 하나님은 이런 일이 가능하실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 때 염려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내가 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 맡겨야 할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염려의 처리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벧전5:7절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돌보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염려를 주께 맡기면 그 일이 주님의 일이 되어 주님이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근심이나 염려가 아니라 그의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복 받는 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여 주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현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와 현세의 물질,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중 먼저 구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에 대해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기를 구하라.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고 영적인 것을 위해 구하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복음을 증거하라는 등의 다양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불신자들처럼 물질을 생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 나라 실현을 생의 목표로 삼아야 할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기에 너무 세상 것을 모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라는 것입니다. 재물에 관심을 두느냐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가치가 결정되기에 하나님 나라 지향적인 삶을 살라고 교훈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의 생각 속에 무엇이 가득한가에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쏟아 붓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에 우리의 인생을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가 있다면 우리는 세상의 사람들이 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우리 인생의 기회들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무엇이 있는 가가 곧 우리 믿음의 현주소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 우리의 마음을 두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에 우리의 마음을 두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처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33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