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2:54-71 베드로의 부인 190장

22: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22: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22:56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22:57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22: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22:59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22:60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22: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22: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22:63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22:64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22: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22:66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22:67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22:68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22:69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22:70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22:71 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에 대해 베드로가 부인한 내용과 산헤드린 공회의 예수 심문에 대한 말씀입니다.

  1. 54-62절은 3차에 걸친 베드로의 부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끌려가시자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져 도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멀직히서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예수님 주위에서 상황의 변화를 살피던 베드로의 모습은 멀리 도망한 다른 제자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담대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면서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라고 장담했던 그의 자신 있는 태도가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쉽게 예수님을 부인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상황은 결코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큼 극한적인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세 차례에 걸쳐 예수님을 부인했는데, 단순히 부인한 정도로 그친 것이 아니라 맹세했으며 심지어는 저주까지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인간적 혈기나 능력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닭 울음 소리를 듣고 예수님의 사랑의 시선을 보았을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회개하고 통곡한 것은 바로 인간의 연약한 모습에 대한 자기 고백이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것은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으로, 가롯 유다의 근본적인 배신과는 차이를 보이며, 베드로와 유다의 나중 모습도 완전히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언제나 성령의 도우심을 의 지 하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63-71절은 산헤드린 공회의 예수님에 대한 심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신 다음날 새벽에 공식적으로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을 받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이러한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에게 붙잡히셔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 날이 새기까지 갖은 희롱과 모욕을 당하신 후에, 이른 새벽에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재판을 받으십니다.

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심문한 핵심적인 내용은 예수님께서 과연 그리스도이신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심문의 의도는 예수께서 진정으로 메시야 되시는지의 진실 여부를 밝히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정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악한 의도를 알고 계셨음에도 자신의 메시야 증거를 통해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이 있을 것을 밝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됨을 분명히 밝히심으로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위해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결국 산헤드린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 죄로 정죄하고 맙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신성을 모독한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핍박하며 심지어는 십자가에 못박은 그들 자신들이었습니다. 실로 이 재판은 진정한 메시야가 영적 소경들에 의하여 무고한 고난을 받는 비극적인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베드로에게 돌을 던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너져 버린 베드로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미리 예견된 실패 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아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해 주셨는데, 베드로의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살하고, “자신은 절대로 안그럴거라고” 큰소리 쳤다는 것입니다. 하도 큰소리를 치고 한심하니까 주님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너는 오늘 닭 울기 전에 3번 나를 부인할 거야!” 그랬더니 베드로가 더 흥분해 가지고, “주와 죽을지언정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하며 큰소리 쳤습니다.

오늘 우리 인간은 다 이런 습성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할 수도 없으면서 큰소리를 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나는 다른 국회의원들과 다릅니다!”

“나는 죽어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결코 큰 소리 칠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다 약하고, 인간은 다 죄악 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다르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인간은 다 똑같습니다. 그러기에 절대 큰 소리 치면 안됩니다. 큰소리 땅땅 쳤지만, 그렇게 못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우리는 오히려 큰소리치기보다는, 나의 연약함과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옵소서!!”

우리나 베드로다 다 같은 존재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약하고,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서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십시오. “주님 맞습니다. 저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는 죄인입니다.” “그러니 약한 나를 주님의 손으로 붙잡아 주십시요”

여러분! 주의 말씀이 우리의 약함을 지적해 주실 때, 겸손하게 그 문제를 인정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항상 무너지게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되었던 것은, 기도하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게 됩니다. 기도하면, 골리앗도 두렵지 않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작은 하녀의 한마디 말도 두려운 겁니다.

여러분! 사람이 두려우십니까? 사람들이 한 말 한마디 때문에 속상해서 잠 못 이루십니까? 기도함으로 성령이 충만하면,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이 두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죄인인 나 자신을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함으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342장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