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16:1-9 예레미야에게 금하신 세 가지 의미 찬송390장
16: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6:2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
16:3 이 곳에서 낳은 자녀와 이 땅에서 그들을 해산한 어머니와 그들을 낳은 아버지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오니
16:4 그들은 독한 병으로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며 묻어 주지 않아 지면의 분토와 같을 것이며 칼과 기근에 망하고 그 시체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리라
16: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초상집에 들어가지 말라 가서 통곡하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지 말라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의 평강을 빼앗으며 인자와 사랑을 제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6 큰 자든지 작은 자든지 이 땅에서 죽으리니 그들이 매장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겠고 자기 몸을 베거나 머리털을 미는 자도 없을 것이며
16:7 그 죽은 자로 말미암아 슬퍼하는 자와 떡을 떼며 위로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그들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상사를 위하여 위로의 잔을 그들에게 마시게 할 자가 없으리라
16:8 너는 잔칫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 말라
16:9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를 내가 네 목전, 네 시대에 이 곳에서 끊어지게 하리라
오늘 말씀은 예레미야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 세 가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예레미야의 신변과 관련된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통해 유다 멸망이 필연적인 일임을 상기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 첫 번째 명령으로, 1-4절에서 아내와 자녀를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결혼을 하여 아내와 자녀를 두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가정생활을 포기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곧 유다의 모든 가정의 자녀들이 질병이나 기근이나 적들의 칼에 의하여 죽게 될 것이니 차라리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이 나은 것이 될 것입니다.
이는 유다의 종말이 가까이 와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징조입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땅에서 죽거나 사로잡혀감으로 생이별을 당해야 하므로 자식과 아내를 둔 자들보다는 오히려 더 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두 번째 명령으로, 5-7절에 초상집에 가서 통곡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제 곧 유다의 전 지역에 시체들이 싸여서 죽은 이를 위하여 곡을 하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는 온 백성에게 미치는 재앙이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죽음이란 미처 고려의 대상조차 될 수가 없음을 나타 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는 자들은 다른 이들의 애도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레위기 10장에 보면,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죽었을 때에도 죽은 아들을 위해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거나 곡을 하는 등의 어떠한 슬픔의 표현도 하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에게 상가 집에 가지도 말고, 그 곳에서 죽은 이를 위하여 곡하는 일도 하지 말 것을 명하십니다.
또한, 유다에 재앙이 닥쳐오면 유다 백성들이 이방인의 풍습을 따라서 상가집에서 고인을 애도하는 표현으로 자기 몸을 자해하거나 머리를 밀어 대머리가 되게 하는 일도 중단될 것입니다.
- 세 번째 명령은, 8-9절로 잔치집에 가서 먹고 마시지 말라입니다.
유다에 재앙이 닥치면 더 이상 신랑과 신부의 소리도, 잔치집에서 나오는 즐거운 노래 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에게 잔치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 말 것을 명하십니다.
이들 금지 조항들은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직, 간접적으로 관련 될 수 밖에 없는 중대한 인륜 대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를 금하신 이유는 유다라는 사회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몰락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그 동안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수 없이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수백 년 동안이나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기다림이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공동체를 떠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공동체는 더 이상 공동체로서의 정상적인 생활이 모두 중단됩니다. 모든 활동이 다 무의미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공동체가 전통적으로 지켜 오던 모든 관습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신 후의 모습입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분께서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요, 인자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그 말씀을 버리기 때문에 임하는 것입니다.
황색 신호등이 달리는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예비 신호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죄악으로 달려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길에서 멈추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알고 변화되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여 나의 잘못된 것을 고치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면 하나님께서 사랑의 징계의 매를 맞을 수 있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든지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기본적인 관습을 지키는 것을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셔야 결혼식도, 장례식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인간관계도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어느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29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