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22:10-19 유다 말기의 왕들 365장
22: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
22:11 여호와께서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 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22:12 잡혀 간 곳에서 그가 거기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22: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22: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22:15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22: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2:17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22:1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22: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오늘 말씀은 유다 말기의 왕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 10-12절은, 살룸, 즉 여호아하스에 대한 말씀입니다.
10절에서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라고 말씀 했는데 여기서 죽은자란 요시야를 가리킵니다. 므깃도 전투에서 애굽의 느고 왕에게 패하여 죽은 요시야 왕을 위하여 울지 말고 느고 왕에게 포로가 되어 끌려간 살룸을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살아서는 다시는 이 땅으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살룸은 요시야의 4남입니다. 그의 아버지 요시야가 애굽의 느고 왕과 므깃도에서 전투를 하다 전사하자, 살룸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왕명은 여호아하스입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된 후 불과 3개월만에 느고에게 붙잡혀 끌려간 후 포로지에서 죽습니다. 그는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첫 번째 유다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은 요시야를 위해 울지 말고 여호아하스를 위하여 울라고 한 것은, 요시야는 30여년간의 영화를 누렸지만 잡혀간 여호아하스는 그렇지 못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13-19절은 여호야김에 대한 말씀입니다.
애굽 왕 느고는 살룸, 여호아하스 대신에 그의 형인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는 왕이 된 후 왕궁을 사치스럽게 증축하는 것을 백성의 권리와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왕궁 증축을 위해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걷고, 임금도 주지 않은 채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백성들을 사실상의 노예 취급을 한 것입니다.
여호야김은 그의 아비 요시야와 대조되고 있다. 여호야김은 자신의 왕적 권위를 근사한 궁궐을 지음으로써 과시하고자 했습니다.
17절에 보면, 여호야김의 악행이 통렬하게 지적됩니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자신의 이기적 탐욕을 만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으며, 독재와 강탈에 혈안이 되었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결말은 19절에서 말씀 합니다.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 탐욕을 품고 포악을 행한 여호야김은 죽어서는 단 한 평의 땅도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죽어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예루살렘 문 밖에 나귀처럼 버려질 것이고,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요시야와 여호와하스, 두 사람이 모두 죽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면에서는 동일하다 하겠지만, 두 사람의 죽음의 의미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시야를 공평과 의를 행한 왕으로 평가하셨으므로 그의 죽음은 복된 죽음이지만, 여호아하스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서의 죽음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참으로 복 있는 인생이었다고 말하려면 그의 마지막이 복된 죽음이 되어야 합니다. 복된 죽음은 복된 삶의 결과입니다. 매일 매일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결과가 복된 죽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죽음이 있습니다. 요시야의 2남으로 여호아하스의 후임 왕이었던 여호야김의 죽음입니다. 그는 죽어서 짐승처럼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버려지고, 단 한 사람도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자 없는 가장 무서운 심판의 죽음을 당합니다. 그가 이렇게 최고의 심판의 죽음을 당할 만큼 하나님 앞에 진노를 산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왕의 권세를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공평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삶으로 복된 인생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나만을 위해 사용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매일 매일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결과가 복된 죽음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을 기억하시고, 매일 매일을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27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