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18:24-33 너의 죽음은 내 탓이다 찬송:486장
18:24 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더라 파수꾼이 성 문 위층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지라
18:25 파수꾼이 외쳐 왕께 아뢰매 왕이 이르되 그가 만일 혼자면 그의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그가 점점 가까이 오니라
18:26 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려오는지라 파수꾼이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려온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18:27 파수꾼이 이르되 내가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니라
18: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8:29 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18:30 왕이 이르되 물러나 거기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서 있더라
18: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18: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앞 단락에서는 다윗군이 반란군인 압살롬군에게 대승을 거두고, 다윗의 압살롬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므로 15장에서부터 시작된 압살롬의 반역이 막을 내리게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에 이은 본문은 그 같은 전투 결과를 보고받은 다윗의 엇갈린 감정 상태를 보여 주는 부분입니다. 즉 다윗은 전쟁의 승리를 전한 아히마하스의 보고로 인해 큰 기쁨을 얻은데 이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전한 구스 사람의 보고를 받고서는 깊은 비탄에 잠기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투의 결과를 전하는 두 사람의 자세에 주목하게 됩니다. 먼저, 아히마하스의 자세입니다. 그는 비록 늦게 출발했지만 다윗에 대한 뜨거운 충정으로 구스 사람보다 먼저 도착하여 승리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는 주저하고 모르는 척 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압살롬의 죽음 소식으로 인해 다윗이 충격받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반해 구스 사람은 압살롬의 죽음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보고했습니다. 때문에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이 심히 슬퍼하고 상심하기는 하나 마침내는 압살롬의 죽음이 저의 불의의 대가임을 인정하고 정상을 되찾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비록 아히마아스의 충정을 높이 사기는 하나 그가 진실을 알리기를 주저한 데 대해서 그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아히마아스의 염려는 하나님의 공의보다 인간적 우려를 앞세운 것에 불과했던 것이었습니다.
한편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들은 다윗은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비록 압살롬이 자신에 대해 반인륜적인 반역 행위를 했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아들이었기에 아버지로서 아들의 죽음을 놓고 슬픔을 억제키 어려웠던 것 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으로 다윗이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압살롬의 반역과 죽음이라는 그러한 모든 비극이 자신의 범죄로 인한 대가라는 사실과, 그로 인해 운명 공동체인 이스라엘 내에 피비린내 나는 분열과 싸움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다윗이 지은 죄를 용서 하셨지만, 죄의 열매는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다윗은 살인과 간음의 죄로 인해서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을 모두 잃어버리는 아픔을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오늘 말씀 33절에 다윗은 이렇게 애곡합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반란을 일으켰던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은 다윗이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고 통곡을 합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사랑입니다. 아무리 자녀가 불효자라고 하여도 자녀가 잘 되기만을 애타게 바라고 기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29절에 보면 다윗은 전령에게 ‘압살롬이 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는 다윗이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본성적인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왕위까지 빼앗으려고 했던 패역 무도한 아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므로 그가 평안하기를 바랬습니다.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자기에게 돌아오기를 고대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패역한 죄인이라도 그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바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이라고 고백함 같이 우리 주님께서는 나를 대신하셔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아버지 이신 우리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30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