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7:11-21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찬송:305장
7:11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7:12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7:13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7:14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7:15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7: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7:17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7: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7:19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7:20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7:21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
오늘 말씀은 엘리바스의 1차 변론에 대한 욥의 답변의 종결부분입니다.
4, 5장에 기록된 엘리바스의 1차 변론에 대하여 욥이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친구들을 원망하였음이 언급된 6장과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7장 앞 부분에 이어 욥의 1차 대답이 마무리되는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욥은 친구들이나 스스로를 대상으로 하여 말하였으나 여기서는 하나님께 직접 자신이 당한 예기치 못한 고난에 대해 의문에 찬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즉 여기서 욥은 11-19절에서 왜 자신만이 숨 쉴 틈도 없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20,21절에서는 혹 자신이 죄악을 행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셔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욥이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욥이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고 의뢰하고 있는 신앙적인 모습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또한 하나님께 자기 운명에 대한 원망과 불평과 의문을 던지고 있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서, 의로운 주권과 섭리의 주 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에의 확신과 소망에 대한 전적인 신뢰라는 성숙된 신앙이 음에게 아직은 부족하다는 사실 또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21절에서 확인 할 수 있는데요, 욥은 2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
욥의 이 질문에는 하찮은 인간의 조그만한 죄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해 주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가슴을 찌르는 고통의 가시가 된다는 것과 인간의 어리석은 죄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셔야만 했던 사실을 이해하였다면 욥은 고난을 불평하기 보다는 감내하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욥은 자신의 무죄함을 강력히 주장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는 하나님이 그의 죄를 사해 주시지 않는 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뭔가 모순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합니다. 즉 앞에서는 욥이 엘리바스가 말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께 징벌 받을 만한 큰 죄를 짓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고, 본절에서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결코 의로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한 그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만한 죄라고는 생각지 않은 지극히 사사로운 허물까지도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그에게 고난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이 너무 높다고 탄식하며 그의 작은 허물을 용서치 않으시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욥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의 또 다른 면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7절에 보면,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가 가장 크게 감사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마음을 두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두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려고 마음을 돌리시고 다짐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관심을 보이시며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은 당시 고통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불만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고난 가운데서 다윗은 감탄과 찬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서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을 하기도 하고 감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보이시는 사랑은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우리의 형편이 어렵다고 불평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늘 관심과 사랑을 갖고 계십니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영적인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을 두시며 관심을 갖고 계심을 체험하며 감사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더욱 기도하고, 비록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심에 대해서 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기다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39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