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11:7-20 회개, 문제의 열쇠 찬송:196장
11:7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11: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11:9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11:10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재판을 여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11: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11:12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의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11:13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11:14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11:15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11:16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기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11:17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11:18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
11:19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은혜를 구하리라
11:20 그러나 악한 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들의 희망은 숨을 거두는 것이니라
오늘 말씀도 어제 말씀에 이어서 소발의 변론입니다.
- 7-12절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소발이 말합니다.
7-9절은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10절에서 소발은 욥에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두시면 누가 막을 수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현재 욥이 당하고 있는 재앙을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시는 형벌이라고 확실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에 대하여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욥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과연 악에 대하여 확실하게 벌을 내리시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1절에서 소발은 욥에게 하나님이 누가 미련하고 허황된 자인지 다 아시는데 악을 분간하지 못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미련하고 허황된 자란 물론 욥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련하고 허황된 자를 찾아서 벌을 내리시고 있는데 악을 그대로 두고 본다는 욥의 말은 잘못된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친구라는 자들이 큰 재앙을 당해 고통 받고 있는 자를 바로 눈앞에 두고 그를 향하여 미련하고 허황된 자라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욥이 얼마나 미련하고 허망한 자인지, 욥이 지혜롭게 되기를 바라느니 차라리 들나귀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욥이 지혜롭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13-20절은 욥에게 회개를 권면하는 소발의 말입니다.
소발은 욥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욥에게 하나님께로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며, 악에서 손을 떼고, 그의 집에 불의가 깃들지 못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복을 내리시리라고 말합니다.
소발의 이 말은 욥을 공격하기 위해 한 말이지만, 그가 한 이 말은 성경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심지어 복음적이기까지 합니다.
15절에 보면, 욥이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며 그의 손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그 어떤 흠이나 부끄러움이 없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의 친구들이 다 그렇듯 소발의 이 말 역시 성경에 나온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회개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중의 하나로, 그가 비록 부끄러운 죄를 지었더라도 그를 의로운 자로 여기게 하십니다.
그리고 15절에, 회개한 자에게 주시는 둘째 복은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고 주께로 돌아오면 두려움이 없이 평안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16절에, 마음의 두려움을 갖게 했던 과거의 환난과 고난의 일들을 잊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17절에서 말씀함 같이 주께로 돌아온 자의 삶이 대낮처럼 밝고 명랑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됩니다. 그러므로 18절의 말씀처럼, 누구든 주께로 돌아온 자들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새롭게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발의 이 말은 옳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소발의 이 말은 욥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아주 잔인한 저주의 말이었습니다. 듣기만 해도 좋은 은혜로운 말인 소발이 이 말이 잔인한 저주의 이 되는 이유는 소발이 이 말의 앞뒤에서 욥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절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들의 희망은 숨을 거두는 것이니라” 이 말은 소발이 ‘하나님께서 회개한 자에게 주시는 복’을 나열한 후 그 후에 덧붙인 말입니다. 실컷 회개한 자에게 내리시는 복을 말해놓고는 ‘그러나 악한자는 그 눈이 흐려져서 피할 곳을 찾지 못하게 된다는 것’과, ‘그러므로 욥처럼 악한 자가 바랄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욥같이 악한 사람은 죽음 이외에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소발은 위에 언급한 복들을 욥에게 왜 말한 것입니까? 성경에는 이런 복들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욥에게는 관계가 없는 말들이라는 것입니다. 너같이 악한 자는 이런 복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너는 회개를 해도 소용이 없으며, 너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죽음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소발은 욥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복에 관한 말씀을 아주 잘 알고 있음을 한껏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소발은 그 복된 말씀을 남을 저주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아름다운 복된 말씀을 아주 끔찍하고도 잔인하게 공격하는데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남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도리어 자신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내 생각대로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그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려고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바로 교훈하며, 바른 길로 인도하며, 위로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42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