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12:1-12 잘못된 조언 찬송:453장

12: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12:2 너희만 참으로 백성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12:3 나도 너희 같이 생각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12:4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12:5 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

12:6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의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

12:7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말하리라

12:8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12:9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12:10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12:11 입이 음식의 맛을 구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간하지 아니하느냐

12:12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오늘 말씀은 소발의 1차 변론에 대한 욥의 답변입니다.

도식적이고 현세적인 인과응보론에 입각해 욥이 당하는 고난을 죄의 결과로 해석하며 욥을 정죄하고 회개를 촉구했던 소발의 변론에 대해서 14:22까지는 이에 대한 욥의 답변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욥은 그의 친구들이 짐승들도 알만한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마치 천하를 다 아는 것처럼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욥은 자신의 친구들이 자신이 당한 재앙을 농담거리로 여기고 조롱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의 이 지적에서 우리는 재앙을 당한 자들에게 대하여 일반적으로 우리가 갖기 쉬운 편견들을 봅니다. 그것을 바로 죄 때문에 재앙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시는 일들이니 혹시 우리에게도 이런 일들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욥은 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이는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자는 재앙을 당한 자를 멸시하고”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평안하게 살고 있다고 해서 마치 하나님의 복을 나 혼자 누리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저 사람이 나보다 가난하거나, 혹은 욥처럼 재앙을 당하고 있다고 해서 그가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여기지도 말아야 합니다.

욥의 친구들같이 재앙을 당한 자를 멸시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는 자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5절 하반절에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미끄러지는 자는 밀어 넘어뜨려도 괜찮은 자로 보이는 법이지”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일부 청소년들이 자기보다 연약한 아이들을 집단으로 괴롭힌 일들이 종종 뉴스가 되고 있습니다. 똑같은 일을 했음에도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형편없는 대접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들도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마치 짐승처럼 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욥이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연약한 자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보십니다.

6절에 보면 욥이 이렇게 말합니다.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의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 욥은 재앙을 당하고 있으니 악인이고, 자기들은 평안한 상태에 있으니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는 욥이 아니라 자기들이라고 생각한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제 마음대로 선포합니다.

내가 남보다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내가 남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함부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까지 왜곡하면서 거짓을 진리로 바꾸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평안한 것이 곧 하나님의 복을 받은 증거는 아닙니다. 잘못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보다 연약하고 힘든 삶을 사는 자들을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마7:2에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주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고 멸시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멸시를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잘못 빠질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독선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욥의 친구들은 바로 이 독선에 빠졌습니다. 자기만 옳다는 것입니다.

이 독선적인 태도는 자신에게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줍니다. 욥이 본문에서 세 친구들을 향하여 지적한 것도 바로 독선들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위로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욥을 찾아왔으나, 변론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대리자처럼 욥을 정죄함으로 오히려 욥의 마음에 더욱 상처를 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이런 독선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독선적인 태도들을 버려야 할까요?

첫째는,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을 하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 들이여고 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면에서 볼 때 얼마든지 내가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만 옳다는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은 누구나 연약하고 오류투성이인 존재임을 깨닫고 내 말을 하려고 하기 보다, 내 주장만 하려하기 보다 더 많이 듣고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존귀하게 여길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나만 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깊이 알고 있다는 것은 무척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좀 깨달았다고 해서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단정하게 되면 불행한 일이 나타납니다. 사람이 무엇을 안다는 것 역시 상대적이기 마련입니다. 그 지식에 대하여 나보다 더 깊이 알고,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는 것이요.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뜨거운 사랑의 가슴이 없고, 머리 속의 차가운 지식은 무익합니다.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마지막으로 ‘나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없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얼마든지 나보다 나은 사람을 세워서 어떤 일을 완성하도록 만드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쓰임 받은 도구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겸손히 주어진 일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모두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독선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겸손하고 온유한 우리 성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44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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