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20:1-11 악인의 번영은 잠깐이다. 찬송:196장
20: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20:2 그러므로 내 초조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나니 이는 내 중심이 조급함이니라
20:3 내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망을 들었으므로 나의 슬기로운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는구나
20:4 네가 알지 못하느냐 예로부터 사람이 이 세상에 생긴 때로부터
20:5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20:6 그 존귀함이 하늘에 닿고 그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20:7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
20:8 그는 꿈 같이 지나가니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요 밤에 보이는 환상처럼 사라지리라
20:9 그를 본 눈이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요 그의 처소도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며
20:10 그의 아들들은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구하겠고 그도 얻은 재물을 자기 손으로 도로 줄 것이며
20:11 그의 기골이 청년 같이 강장하나 그 기세가 그와 함께 흙에 누우리라
오늘 말씀은 욥의 친구 소발의 2차 변론입니다. 본문인 20장은 소발의 2차 변론이면서 동시에 그의 마지막 변론입니다. 왜냐하면 엘리바스나 빌닷은 3차까지 변론을 하는데 소발은 3차 변론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발의 1차 변론 때 전통적인 교리주의자로서 욥을 정죄했던 소발은 본문에서도 역시 악인은 모두 징벌 받으며, 고로 고난 받는 모든 자는 하나님의 징벌에 처해진 악인이며 현재 고난당하고 있는 욥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악인이라고 물아부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은 악인의 일시적인 번영을 말하면서 욥이 이 전에 번성했던 것은 악인의 일시적인 번영이었다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소발은 상대가 자신의 생각과 조금만 달라도 참지 못하는 논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발과 같은 사람은 상대의 말을 끝까지 따져서 그가 잘못 생각했다는 말을 들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어찌 보면 소발은 욥의 생각이 합당한지의 여부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욥이 자기의 생각에 동조하고, 소발에게 아주 훌륭한 생각을 가졌다며 욥이 그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주기만을 바랬을 것입니다.
욥이 자신의 말에 동조하지 않자 소발은 욥을 흉악한 악인으로 몰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는 곧 자기의 원수이고, 자기의 적대자라고 몰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갖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욥이 그의 말에 순순히 동의하지 않자 소발은 소위 꼭지가 돌 정도로 화가 나서 다음과 같이 욥에게 악담을 하며 공격합니다.
5절을 보면, 소발은 욥처럼 악한 사람은 그가 세상에서 형통한다 할지라도 그가 그 형통의 즐거움을 누릴 시간은 아주 잠깐 뿐이고, 곧 망하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6,7절에는 악인은 배설물처럼 망하여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소발은 욥처럼 악한 사람은 그 존귀함과 뛰어남이 하늘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똥처럼 망하여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소발이 욥을 똥에 비유한 것은 욥이 그만큼 치졸하고 흉악한 죄인이라고 몰아붙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8,9절에서는 욥처럼 악한 사람은 그가 죽은 후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0절에서는, 욥처럼 악한 사람은 그의 자녀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구걸을 해야 할 정도로 처참하게 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너무나도 배가 고파서 가난한 자들의 것을 빼앗았을지라도 그 가난한 자들에게 그것을 도로 빼앗겨 배고파 견디지 못하는 참담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악담합니다.
그리고 11절에서는 욥이 혹시 청년같이 기골이 강장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기운이 급격히 쇠락해져서 오늘 내일 죽을 사람처럼 형편없는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욥이 소발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뱉어내는 악담들입니다. 어떻게 지금 고통속에 있는 친구에게 이것이 할 말이겠습니까?
이러한 그의 변론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지극히 인본주의적이고 도식적으로 판단하는 주관적인 견해이며 무한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유한한 인간의 이성으로도 판단 하려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성급한 판단을 삼가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소발은 무척 성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소발은 욥이 친구들의 책망을 받아들이기는커녕 도리어 반론을 하자 이 말에 흥분되어 답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안한 마음에서 답변하는 것은 판단 자체가 조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그것을 흥분해서 들으면 상대방의 말이 나쁘게 들리고, 궤변처럼 느껴지고, 자신을 음해하는 것처럼 들리고, 악담처럼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모든 말을 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판단하는 데에도 신중하게 듣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는 모든 판단의 기준을 자기에게 두면 안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 전체까지 오판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판단하려 할 때에 그 기준을 자기에게 두지 말고 어디까지나 하나님께만 두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가장 바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자초지종을 철저히 생각하는 진지한 판단, 가급적 상대편의 입장에서 하는 긍정적인 판단,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비춰보는 겸허한 판단을 내리도록 스스로 훈련해서 판단을 통해서 실수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32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