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2:14-26 죽은 믿음과 산 믿음 찬송:270장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2: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오늘 말씀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것은 물론 실천이 동반되어야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 14-20절은 행함으로 입증되는 믿음에 대해 말씀 합니다.
앞단락에서 빈부나 지위의 고하와 같은 세상적 기준에 의해 사람을 평가하거나 차별 대우하지 말 것을 권면한 야고보는 본문에서는 드디어 성도의 실천적 신앙을 주제로 하는 본서의 핵심 관건이라 할 수 있는 믿음과 행함의 문제를 교리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14-20절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의 허구성을 밝힙니다. 즉 여기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으로서 자기를 구원하는 데 있어 유효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신의 믿음의 진정성을 입술로만 말할 수 있을 뿐인데 입술로는 귀신도 스스로 믿는다고 말할 수 있으므로 믿음의 진정성을 입증할 길이 없다고 말합니다.
17절에서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또 20절에서도 ‘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믿음에는 열매가 따라야 합니다. 믿음을 가졌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그 믿음에서 나온 열매가 없다면 믿음을 가졌다는 자신의 주장이 거짓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믿음에서 열매에 이르는 과정을 행함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진실한 믿음이어야 하는데 진실한 믿음의 기준은 열매를 맺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논리를 강조한 것입니다.
요15:2절에서 예수님도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야고보는 이 같은 믿음의 열매를 행함이라고 말하고 이 행함이 없는 믿음이 어떻게 너희를 구원하겠느냐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새로운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지난날의 육신의 생명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입니다. 이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이 새 생명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서로 떨어져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차의 레일처럼 언제나 병행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증거는 열매로 나타나며 이 열매는 또한 믿음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증거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가질 때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승리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 21-26절은 이에 대한 증명으로 아브라함의 믿음과 라합의 믿음을 소개합니다.
이 말씀은 믿음과 행함이 일치된 진정한 믿음의 인물이었던 아브라함과 라합을 예로 들어 행함으로만 믿음의 진정성이 입증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라합을 믿음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까닭도, 그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행위로써 증명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구약의 인물인 아브라함과 라합은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조상이며 믿음의 조상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방 여인으로 비천한 기생 출신입니다. 이들은 양극단의 인물이지만 행함으로 믿음을 입증한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라는 데는 공동점을 갖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100세에 얻은 아들인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함을 통해, 라합은 이스라엘의 두 정 탐꾼을 선대하여 도와준 행위로 각각 그들의 믿음을 입증한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참된 믿음은 진리에 대한 단순한 인정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실천적인 순종까지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분명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 믿음은 독생자를 바침에서 입증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그의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라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는 24,16절에 보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주장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자는 교리와 배치되는 듯이 보이지만 이는 결코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야고보는 여기서 행함이 없는 믿음이 구원에 있어 유효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지, 결코 공로적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마7:21절에서 말씀하신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믿음과 행함이 일치된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음을 깨달아 우리 성도는 실천적 삶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서, 죄를 등한히 여긴다든지, 아니면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다든지, 죄를 지음에도 회개하지 않고 계속 거기에 머무르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었는지는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삶에 행함으로 믿음을 증명해 보이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9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