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57-66 주의 손이 함께 하는 삶 찬송:93장

1:57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1:58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1:59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1:60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1:61 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1:62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

1:63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1: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1:65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퍼지매

1:66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

오늘 본문은 천사에 의해 이미 예언되었던 세례 요한의 탄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례인 요한은 육신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던 아브라함의 가정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난 이삭과 같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섭리로 출생하였던 것입니다.

  1. 57-63절은 세례요한의 이름을 짓게 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아들을 낳은 지 팔일이 되는 날이면 할례를 받게 되어 있으므로 세례요한 역시 할례를 받으러 왔습니다. 이때 친척들이 아이의 이름을 사가랴라고 짓고자 합니다.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은 부모의 특권인데도 친척들이 아이의 이름을 지으려고 한 것은, 아마 아직까지 사가랴가 말을 못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부친의 이름을 따라 자녀의 이름을 짓는 것은 유대인에게 일반화된 관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행을 따라간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고 제동을 걸게 되자 이 문제로 과연 이 아이의 이름을 어떤 이름으로 지을 것인가에 대하여 의견이 대립되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다시 부친께 데리고 가서 물어보았더니 서판에 “요한”이란 이름을 썼습니다. 이런 장면을 바라본 친족들은 모두 기이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1. 64-66절은 입이 열린 사가랴의 찬송입니다.

사가랴가 서판에 요한이란 이름을 씀과 동시에 벙어리가 되었던 사가랴의 입이 곧 열리고 혀가 곧 풀려 말을 하게 됩니다.

한편 말을 할 수 있게 된 사가랴가 처음으로 한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전의 의심하던 것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며, 약 10개월 동안 벙어리로 지내면서 사가랴가 어떠한 생활과 생각을 하고 지냈는지 짐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이 침묵의 기간 동안 하나님과 내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자신의 불신을 깊이 뉘우치고 순종의 도를 배웠음에 분명합니다.

65절을 보면, 이러한 모습을 본 사람들이 다 두려워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두려워 하다’라는 말의 원어의 의미는 단순히 무서워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종교적 경외감을 의미합니다. 즉 사람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을 목도하고 하나님께 대해 더욱 깊은 경외감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두루 퍼졌다고 말씀입니다. 요한의 출생이 이렇게 전체 유대 사회에 두루 알려지게 된 것은 이후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의 사역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마리아가 3개월 정도 엘리사벳의 집에 머물다가 돌아간 후 마침내 세례 요한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녀를 낳을 수 없었던 엘리사벳이 자식을 낳았다는 소식에 사람들의 큰 관심과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취를 계속적으로 증거 해 나갑니다. 사소하게 보이는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아이를 낳지 못하여 큰 슬픔 속에서 지내야 했던 엘리사벳에게도 결국 아이를 주심으로 위로해주셨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나에게도 인생역전이라는 희망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57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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