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8:16-25 예수님의 가르침과 바람을 꾸짖으신 예수 400장
8:1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8: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8: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8:19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8:20 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8: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8: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8: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8: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8: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바람을 꾸짖으신 내용의 말씀입니다.
- 16-21절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예수님의 가르침은 먼저 등불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등경 위에 둔 등불처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빛을 비취어야 할 책임 있으며 각자가 행한 일에 대한 보응이 반드시 있다고 하는 격려와 경종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 빛을 등경 위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는 이유는 그 등불을 비취고자 하는 것이지 결코 그 빛을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고자 함이 아닙니다. 등경 위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등불은 이미 등불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빛이란 그 삶의 열매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에 선한 열매를 많이 맺어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9절부터 보면, 참 가족이 누구인가에 대해 말씀 합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면서 병든 자를 고치시는 이적을 행하실 때,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의 모함에 의해 예수님이 귀신에 잡혔다, 바알세불을 힘입었다는 소문이 주변에 퍼졌습니다. 아마 이 같은 소문에 괴로움을 받은 모친 마리아는 아들의 정신적이 괴로움과 피로를 더러 드리려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 온 듯 싶습니다. 그러나 운신조차 할 수 없는 많은 무리들로 인하여 만나기가 힘들게 되자 사람을 안으로 보내어 소식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21절 하반절이죠?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지상의 가족관계의 중요성을 도외시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결코 가족관계를 소홀히 해도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영적 새로운 가족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관계, 그리스도와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아버지의 아들들이 되었으니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족을 이루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 서로 사랑하며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22-25절은 바람을 꾸짖으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갈릴리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실 일이 생겼습니다. 제자들에 의해 배는 육지에서 떠나 항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워, 예수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하자 예수님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그쳐 잔잔하여졌다고 말씀 합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면서 책망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말씀의 의미는 다소 위급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예수께서 함께 있는 한 안전하리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 제자들을 질책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예수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죽은 자를 살려내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럴 때 마다 그들은 놀라기만 할 뿐 예수를 선지자중 한 사람으로 여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제자들이 경험한 사건은 너무 놀라운 것이었으므로 예수의 정체에 대한 물음을 묻는 것입니다. 자연 현상을 지배하시는 예수의 권능에서 신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아직 예수의 신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단지 놀라운 감정에 사로잡혀 ‘저가 누구이기에’라는 물음만 제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험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본문에 나오는 바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는 우리의 ‘인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풍랑은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만나는 ‘고난과 역경’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이란 예수께서 함께 있는 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전하리라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그 어떤 인생의 풍랑과 폭풍우가 휘몰아쳐 와도 전혀 요동치 않고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은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인생의 풍랑을 맞이할 때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풍랑 속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웠다는 것은 주님께 간구했다는 것입니다. 인생 풍랑을 극복하려면 자신의 모든 것 즉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다 내려놓고 주님께 겸손히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 누구를 깨울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어부 출신들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목수 출신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들의 경험들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매어 달렸습니다. 인생의 풍랑을 이기는 비결은 주님께 겸손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는 환난의 비바람과 고난의 폭풍우가 휘몰아쳐 올 때, 주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37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