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1:1-13 기도는 간청입니다. 찬송:361장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11: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11: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11:6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11: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11: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1: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1: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이 기사는 마태도 기록하고 있는데, 마태는 산상 수훈의 일부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참 신자의 기도하는 태도와 외식하는 자나 이방인의 형식적인 기도를 대조하여 참된 기도의 모습을 교훈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누가는 시기나 장소에 대하여 특별한 언급이 없이 단지 제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은 1-4절은, 기도의 내용, 그리고 5-13절은 기도의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1-4절에 나와 있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은 산상수훈의 주기도문과 그 내용에 있어서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하여튼 예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의 서두에서는 먼저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구하고, 그 다음에 개인적인 간구를 드리는 것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것은 기도의 가장 모범적인 전형으로 성도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무 의미 없이 외우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이 기도의 줄기와 내용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5-13절은 예수님께서 기도의 자세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 내용은, 먼저 먼저 밤중에 찾아와 강청하는 친구의 비유를 통해서, 기도할 때에 응답이 될 때까지 인내와 열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기도의 자세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기도의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이러한 기도의 방법은 삼중적인 의미를 지니면서도 뒤로 갈수록 더욱 강조되고 적극적인 의미를 지녀 점층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구한다’는 것은 자기의 결핍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그것을 채워 주시도록 호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구한다’는 말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결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자기 결핍을 인식하지 않고는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찾는다’는 것은 구하는 것에 행동을 더한 것입니다. 즉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기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인간 스스로의 노력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두드린다’는 것은, 구하는 것에 행동을 더하고 그 위에 인내를 더한 것을 말합니다. 즉 구하는 자는 그것이 성취되기까지 믿음으로 바라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약4:2절에서 말씀함 같이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며, 기도에는 인내가 동반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기도할 것과, 특히 그 기도의 응답에 대해 확실하게 강조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이 축복이요 은혜이며, 하나님의 주신 특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서 우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명하신 성도의 행할 바이며, 하나님이 축복으로 응답하시는 성도의 아름다운 영적 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성도의 영적 특권인 동시에 의무로서의 기도 안에 담긴 신앙적 의미가 무엇일까요?

먼저 하나님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시며.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는 그분과 만나 대화와 교제를 나누어야 하며 그것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계속적인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고 친밀한 대화와 교제를 나눔으로써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으며, 그 결과 그분으로부터 오는 힘과 생명을 풍성히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을 확신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명하시되 그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어떤 문제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서 더욱 더 간절하게 기도에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성도의 기도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기도를 듣고 계시며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응답하실 것을 우리가 분명히 확신한다면, 우리는 결코 기도를 쉬지 않으며, 어떤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낙망치 않고 끝까지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여러분과 만나시길 원하시며,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기뻐 하십니다. 그리기에 우리 모두는 꾸준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끝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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