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1:29-41 진정한 표적은 270장
11: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11: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11: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11: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11: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11: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11: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11: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11: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11: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11: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11: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오늘 말씀은 요나의 표적 이야기와 바리새인의 형식주의에 대한 말씀입니다.
- 29-32절은 요나의 표적에 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행하시는 권능을 수 없이 보아 온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향하여 표적을 보여 달라고 도전해 왔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정죄 하시고 주님은 그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과 같은 표적을 보여 주지 아니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너희에게 메시아 된 표적을 보여줄 것은 요나의 표적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요나의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메시야 되시는 표적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하나님으로부터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신 명령에 불복종한 사람입니다. 그는 니느웨 성과는 정반대 방향의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러나 그 배는 이 요나로 인하여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고, 요나는 풍랑을 초래케 한 장본인으로 제비에 뽑혀 바다가운데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물고기로 인하여 그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이 물고기 뱃속에서 삼 주야를 지낸 후 물고기 배에서 토해냄을 받아 니느웨 성에 들어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가 고기뱃속에 들어가 죽은 자와 같이 사흘간 있다가 다시 살아 나온 사실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이 같은 요나의 사건은 예수님의 속죄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하심에 대한 하나의 대표적인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사실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에 참으로 오묘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사건과 징조와 표적을 그리스도에게 맞추어 지도록 계획하시고 간섭하신 것입니다. 요나가 그가 당한 사건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야 되신 유일하신 표적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곧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 사건이며 이 사건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요 이것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생의 말씀을 뒤로 던지고 표적이나 따르고 이적이나 쫓아다니는 믿음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의 표적을 굳게 잡고 소망으로 전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33-36절은, 몸의 등불인 눈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등불과 사람의 눈을 비유적으로 비교하시면서 영적인 교훈을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곳에서 말씀하고 있는 눈은 육의 눈이 아니라 신령한 영적인 눈을 말합니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성한 눈은 곧 마음의 눈, 신령한 눈, 영적인 눈을 말합니다. 성한 눈을 가진 사람은 온 몸이 밝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온 몸이 성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죄를 떠난 생활, 순종의 열매를 맺는 생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생활을 말해줍니다.
이 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등불처럼 빛을 비추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어 그 눈을 어둠에서 빛을 발산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눈을 밝혀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눈을 밝히지 못한 사람은 실인즉 소경 된 사람들이요 이들의 몸은 어둠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눈은 자기의 죄를 바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등불이 비추어야 그 빛을 따라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빛이 우리의 몸에 비췰 때 우리는 우리 몸 속에 숨겨 있었던 온갖 더럽고 추한 죄악이 노출되어 그 죄악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눈을 소유한 사람이 자기 안에 죄가 존재하고 그 죄가 자기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 죄의 지배로 자기가 죄의 종의 상태에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비추어 자기들은 의롭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눈이 어두웠던 그들은 자기들 몸 안에 있었던 죄를 찾아 낼 수 없었습니다. 말씀이 없는 눈은 빛이 없기 때문에 자기 속에 죄가 있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몸에 결코 어두움이 깔려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받아밝은 눈으로 온 몸을 살펴서 죄를 끄집어내고 흠과 점이 없도록 항상 빛으로 채워야 하겠습니다.
- 37-41절은 바리새인들에게 내린 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한 바리새인의 초청을 받고 그 집에 들어가 앉으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손을 씻지 아니하시고 음식을 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한 이 바리새인은 주님이 손을 씻지 아니하고 음식을 대하시는 모습을 보고 이상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장로의 유전을 따라 정결의 예법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시장에서 집에 돌아와서는 반드시 물을 몸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들기 전에도 물론 손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씻지 아니한 손으로는 음식을 먹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같은 생활이 하나의 규범이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기를 초청한 이 바리새인을 향하여 너희는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나 너희 속은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의 겉은 이처럼 물로 세척하여 깨끗하게 보이고, 정결케 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사람의 정결은 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속에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속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하셨으니 이런 것들이야말로 물로 씻을 수 없는 더러움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겉으로는 거룩한 척 하지만,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외식하는 이들을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유대인들은 지혜의 근본이 되시는 예수님을 목전에서 뵈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날마다 따라다니며 들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주님 자신이나 주님의 말씀보다 눈에 보이는 표적만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신앙생활을 당시 유대인들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만을 바라보거나 주님의 말씀에서 삶의 교훈과 능력을 찾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체험이나 기적만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서 우리 신앙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의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표적과 특별한 체험들이 없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오직 말씀만을 붙잡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나가고자 하는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어떤 특별한 체험들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우리가 보아야 할 표적은 ‘요나의 표적’ 하나면 족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치고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그 표적 하나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 주님 바라보며 오늘 하루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8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