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4:1-11 겸손의 왕 540장

14:1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14:2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14: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14:4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14: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14: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14: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14: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14: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4: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오늘 말씀은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고쳐주신 내용과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지게 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1. 1-6절은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고쳐주신 내용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 집으로 들어가셔서 떡을 잡수셨다고 했습니다. 아마 바리새인인 이 사람이 떡을 대접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의 동정을 살피면서 어떤 결정적인 고소 거리를 찾고자 하는데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주님은 어느 곳이건 어떤 장소이건 구애되심이 없이 가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누구에게든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대하여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요구하는 그 이상의 안식일의 요구 조항을 장로의 유전이라 하여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안식일 관념이 이상했던 일은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주님의 일에 일제히 반기를 쳐들고 나온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율법에는 절대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같은 잘못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주위에 있는 율법사들과 바리새인의 무리들을 보고 주님 앞에 서 있는 수종병든 한 사람을 세워놓고는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이 수종병은 신체의 여러 부위에 물이 고여서 몸이 붓고 살이 썩어가는 병으로 당시에는 불치의 병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하여 누구하나 분명한 답변을 못했습니다. 합당치 않다고 하는 근거를 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잠잠하자 주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누가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을 못한 것은 주님의 말씀이 타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주님을 향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일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일이라고 하는 그들의 비난이 얼마나 큰 모순임을 그들로 스스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우리를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시키시려는 축복이기 때문에 이날에 이웃에게 선한 일을 하는 일은 결코 안식을 범하는 일일 수 없습니다. 일을 금했다고 해서 자기 아들이 우물에 빠진 것을 그대로 두었다가 죽인다면 이런 처사야말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병자를 고쳐주는 논리도 이와 똑같은 것입니다.

  1. 7-11절은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 지리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아마 이 바리새인의 집에 주님과 함께 떡 먹을 사람들을 많이 청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주인의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제각기 상좌로 앉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시고 그들의 교만과 높임을 받으려고 하는 공명심에 대하여 교훈해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청함을 받았을 때 결코 높은 자리에 앉기를 바라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만약 그 자리에 더 높은 사람이 들어왔을 때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결국 아랫자리로 밀려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는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자신이 맨 뒷좌석, 말석에 앉으면 나중에 주인이 그를 불러 더 높은 자리에 올린다면 그는 그 많은 무리 가운데서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자기를 낮춘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께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며 높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라는 뜻입니다. 이 낮아짐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찢는 회개, 통회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심령에 통회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은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우리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 높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나를 높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높이는 일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겸손하고 하나님을 높이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때 하나님은 나를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높임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예수님이 잔치에 초대되어 가보니까 모두가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혹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높은 자리에 앉고 싶고,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모습이 우리 안에 혹시 없는지요.

주님은 높은 자리에 앉기 보다는 끝자리에 앉으라고 말씀 하십니다. 사단은 상석에 앉으려고 하다가 하늘에서 쫓겨난 존재입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가장 높은 자리인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쫓겨난 것입니다. 사단의 그 마음 한 가운데 뭐가 있습니까? 교만이 있습니다. 높아지려는 마음입니다.

반대로, 우리 예수님! 어떤 분이십니까? 가장 높은 자리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그 높은 자리를 버리고 이 낮고 천한 자리로 오신 분입니다. 그 모든 하늘 보좌를 버리고 말구유에까지 오신 분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우리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자신을 늘 낮추는 겸손한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가 그 마음 따라가면 나중에 우리 주님처럼 높아집니다. 내가 낮추면 주께서 높여 주십니다.

우리 모두 오늘 하루 사시면서 끝자리를 택하십시오. 직장에서 끝자리로 가서 내가 책상도 닦고 빗자루 들고 청소도 하고, 커피도 타 주십시오.

세상은 상석!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석, 끝자리를 차지하려고 오히려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이런 겸손한 성도님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28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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