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6:16-31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257장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6: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16:18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16: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16: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16: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16: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16: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16: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16: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16: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16: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16: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 16-18절은 율법의 중요성을 말씀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문자적 해석이나 편협한 교리를 준수하는 데에 국한시키면서 자신들을 율법의 정통신앙을 준수하는 거룩한 자들로 자처 하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지적하면서 메시야 시대의 도래로 율법이 복음으로 대체된 것을 선포하십니다. 즉, 요한의 때까지는 구약 시대로서 바리새인들의 생각이 통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이후로는 그 복음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율법의 무가치성을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영원성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율법의 근본정신과 그 자신이 율법의 완성자로 오셨음을 강조하기 위해 신24:1-4에 언급된 이혼 문제를 거론 하셨습니다.
여리서 우리는 율법에 대한 옳은 인식을 해야 합니다. 율법에 순종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이제 복음이 주어졌으므로 율법과는 완전한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양 극단에 서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성도의 삶을 살아갈 때의 좋은 기준으로 여기고 선용해야 할 것입니다.
- 19-31절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 줄거리는 생략하겠습니다.
이 비유는 ‘옳지 않는 청지기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당시 외식적인 삶을 살면서 세상과 재물을 사랑한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거듭된 교훈에도 불구하고 물질에 집착하는 삶을 돌이키려 하지 않는 완악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교훈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들은 당시의 소외된 사회 계층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신의 탐욕만을 채우려한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는데 세상에서는 부자의 풍요와 나사로의 비참함을, 하나님 나라에서는 부자의 고통과 나사로의 평안을 대조시켜 세상에서의 삶과 하나님 나라의 삶이 어떠한가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여러 가지로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종으로 들려주셨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부자의 결국을 보여주심으로 경고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부자는 율법적인 의의 표본이요, 나사로는 복음으로 의를 얻는 표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셋째는 사람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을 주시려는 데 교훈의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부류에 속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하여 스스로 물어 보고 바른 신앙으로 이 땅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재물에 집착한 세속적 삶보다는 미래에 소망을 두고 이 땅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누가는 16장에서 나타난 비유들을 통해서 세상에서 누리는 풍요와 부유한 생활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이기적으로만 사용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을 위한 선한 일에 사용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재물을 맡은 청지기로서 올바로 행하는 것이며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진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불우한 이웃과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선한 사업에 힘쓰면서 미래의 소망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찬송:34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