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7:1-10 믿음의 능력 269장

17: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17: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17: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17: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17: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17: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17: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오늘 말씀은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 대한 경고의 말씀과 믿음의 능력에 대한 말씀입니다.

  1. 1-4절은 실족케 하는 자의 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우리가 사람들로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같은 일은 다음 몇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악행을 권장함으로 실족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죄악된 행위를 권장함으로 그 사람으로 결국은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한 일은 아담으로 실족케 했습니다. 들릴라의 간교는 삼손을 실족케 했습니다.

경종하지 않음으로 실족시킬 수도 있습니다. 죽음의 길을 달려가고 있는 사람에게 살길을 가르쳐 주지 않을 때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칠 것이라고 여기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지 못함으로 그들로 실족케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한 나의 말을 통해서, 나의 행동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행 심사를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고, 실족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이 같은 일에 대하여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시면서 실족케 하는 일을 경계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첫째로, 3절에 보면,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경고하라고 하신 말씀은 다음 몇 가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권고하라는 말씀입니다. 마18:15에서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그 사람을 찾아가 권고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형제의 생명이 그의 죄로 인하여 파멸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기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죄라도 회개를 건너뛸 존재는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죄라도 회개 없이는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죄의 사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 스스로가 용서해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용서에는 먼저 하나님의 용서가 뒤따라야 합니다.

주님은 “남을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믿음에서 실족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혹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가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혹 회개한 내 형제에 대하여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남의 신앙을 붙들어 주며, 남의 허물을 가려 주며 사랑으로 권면하며 생명의 길로 이끄는 아름다운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1. 5-10절은 겨자씨 만한 믿음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의 믿음이 부족한 것을 알고 주님을 향하여 나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며 간구를 합니다.

이때 주님은 6절에 보면,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말씀 합니다.

믿음을 더해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대한 예수님의 회답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근본적 원리로 답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겨자씨는 씨 중에 가장 작은 씨는 아니지만, 유대인에게 가장 작은 것을 표시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믿음을 말씀하시면서 모래나 먼지 등을 실례로 들지 않고 굳이 겨자씨를 예로 쓰신 것은 겨자씨는 비록 작지만 그 안에는 생명이 내재되어 있어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여기서 겨자씨만한 믿음이란 것은 존재 여부만을 분간할 수 있는 극히 적은 양의 믿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만한 양의 믿음이라도 진실된 믿음일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제자들 스스로를 적은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그 위에 많은 믿음을 더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사실 그들의 믿음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믿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믿음의 양을 요구한 것이었고 예수님의 회답은 믿음의 질을 지적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못할 일이 없다고 주님은 말씀애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7절부터 보면, 주님의 종으로서 겸손한 헌신의 당위성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주인을 충실하게 섬기는 종은 어떠한 보상이나 칭찬을 바라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마땅히 행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종 된 제자들은 자신이 받은 직분을 충실히 수행한 후에 칭찬과 보상을 기대하기 보다는 다만 무익 한 종이 라는 고백을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충실한 제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겸손과 순종의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몸소 종의 형체로 오셔서 겸손한 희생을 보이신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게 헌신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에게도 이런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겨자씨의 믿음이란 곧 살아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씨는 작지만 그 씨는 살아 있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이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을 소유하면 능치 못함이 없는 것입니다.

또 겨자씨의 믿음은 성장하는 믿음입니다. 씨가 심겨지면 밭에서 자라나는 것처럼 믿음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씨가 자라나지 않을 때 아무런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믿음이 성장하지 못할 때 그 같은 그리스도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겨자씨의 믿음은 열매를 맺는 믿음입니다. 씨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씨는 이미 죽어 있는 씨앗에 불과합니다. 이 겨자씨는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영접한 그리스도의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에게 살아 있는 믿음을 주십니다. 생명이 있는 믿음을 주십니다. 성장하는 믿음을 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순종하였을 것이란 말씀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라도 능히 이룰 수 있다고 하시는 비유적인 말씀입니다.

이처럼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의 역사를 이루며 이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45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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