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7:11-21 감사한 사람 찬송:338장
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7: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7: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7: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7: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오늘 말씀은 나병 환자의 치유에 대한 말씀과 하나님 나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데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 11-19절은 나병 환자의 치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한 마을로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멀리 서서 주님께 소리를 높여 간구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면 자신들의 질병을 고침 받을 줄로 알았습니다. 예수를 만난 그들은 소리를 높여 간구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들은 다만 주님의 자비에 호소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말씀을 그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이 말씀에 순종하여 성안으로 달려간 것으로 보아 무슨 말씀이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는 경우는 그 몸이 온전히 나병에서 고침 받았을 때 그의 의학적인 확인을 위하여 찾아가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때 문둥병이 고쳐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몸에서는 여전히 고름이 나옵니다. 손은 꼬부라졌습니다. 눈썹은 빠진 대로입니다. 그런 형편인데 가서 보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믿고 가서 보이라는 것입니까? 그렇지만 그들은 이 말씀을 믿고 달려갔습니다.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의 몸은 아직 문둥병 그대로 있었지만 주님의 말씀에 의하여 성안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가다가 그 노중에서 그들의 문둥병이 나은 것입니다.
그들은 이처럼 출발이 좋았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기도하고 응답 받은 것입니다. 그들에게 기쁨이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가 문제입니다. 그들은 기도는 했지만, 그리고 응답은 받았지만 감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이라고 엡1:3-6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고침을 받은 후 예수님에게 돌아온 사람은 한사람 뿐이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돌아와 감사하는 그를 향하여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은 돌아오지 않은 아홉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은혜를 입었건만 감사하지 못하는 그들의 불신앙을 탄식하시며 그들의 앞날을 염려해서 이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편 주님께 돌아온 문둥이는 놀라운 칭찬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은혜를 받기는 쉬워도 감사하기는 어려운 존재입니다. 감사에는 재물이 따르고 봉사가 따르고 충성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같은 일이야말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 20-21절은 하나님 나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상충되는 점이 많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대망하는 메시야가 오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임하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과연 그리스도이시라면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대답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시험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고 물은 것입니다.
주님은 물론 이런 그들의 물음의 저의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하나님의 나라 관념을 바로 잡아주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올바른 진리를 가르쳐 주셔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물음에 대하여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둘로 구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 자기들이 그 나라의 일원이 될 수 있는 현세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현세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야 왕국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기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눈에 보이게 임하는 나라가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크게 둘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심령 천국이요, 하나는 영원 천국입니다. 이 두 나라는 모두 영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 나타나는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나라가 아닌 것처럼 눈에 보이는 어떤 장소를 가리킨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바라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임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둘러쌓고 있는 그 안에 주님이 계심같이 그 주님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 심령에 예수님이 내주해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안에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주님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감사하지 못한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감사 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토마스 머턴’은 “감사와 배은망덕 사이의 중립적 입장은 없다. 감사하지 않는 이들은 곧 모든 것을 불평하기 시작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가 아니면 배은망덕인 것입니다. 그 중간은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열 명의 나병환자는 예수님 때문에 불행한 삶에서 건짐을 받았고 병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은혜를 받고도 은혜 받은 자 답게 사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아홉 명은 행복을 주신 예수님께는 감사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 명의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자신에게 주신 행복을 어디에서 얻어졌는지를 바로 깨닫고 가던 길을 멈추고 주님께 돌아와 감사함을 온전히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큰 은혜를 받고도 그 은혜를 진정 감사할 줄 모르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은 은혜를 받은 자라면 은혜를 받은 자 답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늘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30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