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8:1-14 끈질긴 기도, 겸손한 기도 찬송:536장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18: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18: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18: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기도에 관한 말씀으로 과부의 간청하는 기도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1-8절은 과부의 간청하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어떤 도시에 있는 한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왜 주님은 이 비유에서 불의한 한 재판관을 하나님과 비교하여 말씀하셨는가? 이 말씀은 7절의 ‘하물며’에서 해결됩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하나님 일까보냐”는 논법으로 적용하시기 위하여 그러하신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무시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두려워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이 재판관이 얼마나 불법적이며 몰인정하며 교만한가에 대하여 강조하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리고 원한이 있는 한 과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력하고 의뢰할 곳이 없으며 무력한 사람으로 등장시키셨습니다. 두 사람의 인간성과 그 처지가 이러하므로 이 과부가 그 재판관에게 간구하는 것은 도저히 응답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이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에서 불의하고 교만한 재판관이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던 비결에 대하여 이 과부의 계속적인 간구를 들었습니다. 이 과부의 끊임없는 간구는 그를 심히 괴롭게 만들기에 족했던 것입니다. 그 재판관은 이처럼 스스로 말했습니다. 5절이죠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그는 자신의 직책상 이 과부를 만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과부는 억울한 사정을 고소한 사람이요 재판관은 그 문제에 대하여 판결을 내려 주어야 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 간구를 듣지 않으려고 해도 이 여인은 막무가내 자신의 간구를 그치지 않고 늘 찾아와 올리기 때문에 귀찮아 죽을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과부의 소청을 들어주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것입니다. 그것은 재판관이 의롭게 되어서가 아니라, 그 여인의 사정을 들어주고 싶은 불쌍한 생각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자기가 번거롭고 괴로움을 당하기가 싫어서 들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기도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과부와 같이 하나님을 번거롭게 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번거롭게 해 드리는 기도란 기도를 하되 항상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응답이 더디면 기도의 자세가 움츠러듭니다. 이 문제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의심을 품게 되며 기도의 힘을 상실하고 그만 그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한번 하나님께 간구하리라고 결정했으면 그 문제의 응답을 받기까지 항상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을 번거롭게 해 드릴 정도로 기도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1. 9-14절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자세를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따로’란 말은 별도로 란 의미로 그는 기도할 때에도 세리 같은 죄인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따로 기도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감사란 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아니라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는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회개가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우리는 세리의 기도를 보게 됩니다. 그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갈보리에서 바라볼 때 누가 감히 눈을 우러러 바라볼 자가 있겠습니까? 죄 값은 사망이요, 나의 이 같은 죄와 허물이 결국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이 같은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 앞에 감히 눈을 우러러 바라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감사 때문입니다. 감격 때문입니다.

세리는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했습니다. 가슴을 친 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참을 수 없는 자신의 죄에 대한 통회입니다. 죄인들이 이때 가슴을 치는 애통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을 찢는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회개가 구원에 이르는 회개입니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했습니다. 십자가 밑에 엎드린 심령이 하나님께 아뢸 수 있는 기도는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하는 고백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어찌 자기 의를 주장하며 다른 형제를 판단하여 자신의 선함을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두 사람 중에 과연 누구에게 의의 선포를 내리셨습니까? 14절에 보면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란 세리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세리에게 의를 주셨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의는 율법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죄를 통회하여 하나님께 불쌍히 여기심을 받는 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하여 의를 선고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결론적으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스스로 낮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주십니다. 구원을 주십니다. 평안함을 주십니다. 소망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하나님은 그를 낮추십니다.

우리는 이 세리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어야 할 것입니다. 낮추는 방법이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통회하며 그의 자비와 긍휼히 여기심을 받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 하나님은 이 불의한 재판관 같은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끈질기게 매달려야 겨우 어쩔 수 없어서 들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그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8절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은 “나는 참된 믿음을 보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지금 기도에 관해 말씀하시고 계신데, 우리 하나님은 기도에 대한 믿음을 보기 원하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믿음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기도의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하기 보다는 자기 지혜와 경험과 능력으로,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된다는 것을 믿기에, 상황을 바라보지 않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기도에 관한 나의 믿음을 기도하는 삶을 통해 실천해 나가는 기도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36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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