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1:1-11 가난한 과부의 두렙돈과 마지막 때에 나타날 징조 찬송:263장
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1: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21: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21: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21: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21:7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21:8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21:9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21:10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21:11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오늘 말씀은 가난한 과부의 두렙돈과 마지막 때 나타날 징조에 대한 말씀입니다.
- 1-4절은 칭찬받는 과부의 헌금에 대한 말씀입니다.
앞장에서 예수님은 과부의 재산을 착취하는 서기관들의 탐욕을 지적하시면서 그들의 마음과 중심이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위선적인 종교 생활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이제 본문에서는 한 가난한 과부의 온전한 헌금을 통해 외식적인 신앙에 빠져있던 종교 지도자들을 간접적으로 책망하시면서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에 대해 교훈하십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하는 것과, 또 가난한 과부가 헌금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사실 외면상으로 볼 때는 부자들이 드린 헌금은 가난한 과부가 드린 헌금보다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과부가 드린 두렙 돈은 최소 단위의 화폐로 하루 품삯의 5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히 적은 양의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질적으로 볼 때는 풍족한 중에 있는 부자가 드린 많은 헌금은 그 일부를 드린 것인데 비해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의 헌금은 생활비 전부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즉,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과부의 헌금이 상당히 적은 돈이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부자가 많은 돈을 헌금한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자신의 소유 전체를 바치거나 가난한 중에 헌금을 바쳐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서는 헌금의 많고 적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헌금을 바치는 자의 정성과 진실된 마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이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은 일백 퍼센트 자신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과부의 신실한 신앙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행동 하나까지도 그냥 간과하시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면전의식을 가지고 그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계신 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완전히 맡기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 하는 신앙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소유와 존재가 하나님의 것임을 마음 중심으로부터 고백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5-11절은 마지막때 나타날 징조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은 성전 안에서 여러 가지를 교훈하시며 논쟁을 벌이시던 예수님께서 성전을 나와 감람산으로 가시는 토중 어떤 사람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말한 것을 계기로 장차 예루살렘 성전이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것 이라고 예언하신 내용입니다.
사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B.C. 19년에 착공되어 A.D. 63년에 완공될 정도로 방대하고도 화려했으며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당시 성전에서는 온갖 비리가 성행했고 인간의 위선과 가증한 종교 형식만이 조장되었습니다. 따라서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진리가 없었으며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거룩한 장소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성전의 파멸을 선언하심으로써 이스라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은 완공된지 불과 7년여만인 A.D.70년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 기초까지 파헤쳐져 그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를 담고 있지 못하는 종교 및 교회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한편 이러한 본문은 본문 이하에 언급되는 종말 예언의 서론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언제 이런 일이 있을 것이냐고 묻습니다. 막13:3에 의하면 이 질문은 예루살렘 성 전체의 모습이 잘 내려다보이는 감람산에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 야고보, 안드레, 요한 등이 질문한 것으로 나타나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두 가지 사실을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전 파괴의 구체적인 시기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성전 파괴 전에 있을 징조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 파괴는 세상 종말에만 있을 수 있는 일로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의 이 질문은 세상의 종말의 시기와 그 징조를 묻고 있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36절까지 계속 됩니다. 이중 오늘 본문의 말씀은 크게 두 가지를 말씀 합니다.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과 난리와 소요의 소문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종말의 첫째 징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장한 적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이러한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예루살렘의 함락 이전과 이후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곳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적그리스도의 거짓 주장과 유혹을 구별하고 경계함으로써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난리와 소요의 소문입니다. 여기서 난리는 큰 전쟁을 말하며, 소요는 ‘끊임없는 분쟁’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전쟁과 소요가 종말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징조가 되겠지만, 이것과 함께 세상의 종말이 즉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통해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절에 보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 날 것을 말씀 합니다. 이 말은 종말에 가까이 이르러서는 민족 또는 국가 간에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될 것임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11절에서는 자연적인 재해가 뒤따를 것을 말씀하시는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구약 성경에서도 인간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형벌 중의 하나였습니다. 또 ‘하늘로부터의 큰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별들 사이의 이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어려운 때를 만날수록 때를 잘 분별하여 종말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할 때에는 액수의 많고 적음에 부끄러움이나 자랑을 느낄 것이 아니라 내가 드린 헌금이 얼마였든 내가 과연 이 과부와 같은 정성으로, 즐거움으로, 사랑으로 믿음으로 드렸는가를 살펴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드린 헌금이 비록 적은 것이었다고 해도 이 과부처럼 드려졌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을 드린 것이며 우리 주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하나님의 기적이나 축복은 큰 것에서 일어난 것은 없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바친 기드온의 삼백 명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큰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떡 한 덩어리의 정성이 그들의 가정 위에 삼 년 반 동안의 먹을 양식을 공급받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모두 이 과부의 본을 본받아 바른 헌금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찬송:21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