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4:13-27 엠마오로 동행하신 주님 400장
24: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24: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24: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24: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24: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24: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24: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4: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4: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4: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4: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4: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주님의 죽으심에 실망한 두 제자가 엠마오로 향하여 간 내용의 말씀입니다.
자기들의 선생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까지 지낸 사실을 바라본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알고 제각기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있었던 제자들 중 두 명이 그날 아침 일찍 엠마오로 떠난 것입니다. 이들이 엠마오로 가게 된 사유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지만 아마도 자기들의 고향이 아니면 처자가 있는 고장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주님이 살아 계실 동안은 주님께 소망을 두고 그를 따랐지만 주님이 고난을 당하고 난 후에는 마치 부모를 일시에 잃어버린 고아와 같은 쓸쓸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엠마오란 예루살렘에서 25리 정도에 떨어져 있는 마을로 엠마오란 말의 뜻은 따뜻한 우물이란 뜻입니다. 주님의 고난만 알고 그의 부활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의 살아 계신 증거를 못 가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도 엠마오를 향하여 슬픈 기색을 띄며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그 길로 계속 걸어가게 하시지 아니하시고 여러 가지 영적 경험을 통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발을 돌이키게 하여 교회의 일꾼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걸어가는 발걸음은 슬픈 발걸음입니다. 기쁨도 없고 소망도 없고 모든 것이 헛된 꿈과도 같고 허황된 일로 여겨지는 심정인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경우를 보기로 합시다.
첫째로 그들은 19절에 보면, 예수님을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적인 사명을 가지고 계시기는 하지만 선지자는 아니십니다. 그는 선지자의 증거를 받으신 구세주이십니다. 선지자로 믿은 그들은 그의 부활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21절에 보면, 그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자로 바랐습니다.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신 메시야가 아니라 영광의 메시야로 그가 유대인의 왕이 되시며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그런 분이신 줄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당장에 이스라엘의 구속을 바라던 그들에게 예수님의 죽으심은 치명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죽은 이 마당에 그들은 예루살렘에 더 머물러야 할 필요성이 없었습니다. 이 두 제자는 다른 제자들에 앞서 일찍 엠마오를 향하여 길을 재촉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에 낙심하고 인생에 실패하여 자신들을 부요하게 해 주시고 자기에게 복을 주실 줄 알았다가 이것도 저것도 안 되었을 때 이들 모양 예루살렘를 떠나 엠마오로 다시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우리 중에서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이 그들과 동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 두 제자들은 슬픔 속에 잠겨 주님을 생각하면서 발길을 엠마오로 향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그들이 엠마오로 가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발걸음을 돌이키게 하시기 위하여 그들이 가는 엠마오의 길에 동행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주님이 당하신 일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모든 우리의 음성을 다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대화를 하였지만,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주님과 대화하면서도 그분이 주님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인 눈이 가려짐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지 아니합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25, 2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 합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하여 성경을 자세히 풀이해 주며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야 할 일에 대하여 증거 하신 것입니다.
여기를 보면 두 제자는 예수님의 죽음을 애통해 했지만 단지 메시야 이기를 바랬던 한 선지자가 죽은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의 증언을 통해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다른 제자들과 같이 전혀 믿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보여 준 제자들의 신앙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아직도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오늘 말씀 15-16절을 보면, 실의에 빠져 고향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십니다. 그리고, 동행하십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실패와 좌절에 빠져 있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동행해 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데 그 예수님을 못 보는 겁니다. 그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모르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예배할 때 주님은 그 자리에 계신 줄 믿습니다. 두 세 사람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도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주의 거룩한 백성들과 언제나, 늘 동행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늘 기가 죽는 겁니다. 주님이 계신데도 주님을 보지 못하고 걷는 인생은 늘 불안한 겁니다.
늘 우리의 가리워진 눈이 열려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늘 나와 동행하고 계심을 깨달아서, 담대하게 당당하게 나아가는 그런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40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