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4:28-43 부활의 주님 370장

24: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4: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24: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24: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24: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24: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24: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24: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24: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24: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24: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24: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간 두 제자에 대한 말씀과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말씀입니다.

  1. 28-35절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주 제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제 말씀에 이어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던 주 제자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길가에서 만나 나그네 걸음을 같이 걸으며 목적지에 이른 후 더 가시려는 주님을 강권하여 자기들 집으로 인도했습니다. 한 집에 들어가셔서 식사하실 때 주님이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그들에게 주실 때 그들의 눈이 열려져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비로소 이제 모든 것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길에서 그분에게서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던 사실을 상기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낙심하여 세상 길로 향하던 두 제자는 다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길은 그에게 가까이 가서 그의 말씀을 듣는 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함으로 우리로 강팍한 마음을 녹이게 하고 주님께 대한 잘못된 지식을 바로 잡게 하여 새로운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바른 지식이 아니고서는 소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바로 섬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처럼 주님을 만난 후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올라가 열 한 사도와 그 함께 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엠마오로 가던 주 제자가 돌아와 엠마오로 가는 도중 주님을 뵈었다고 증언함으로써 주님의 부활은 더 확실한 사실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두 개의 사건이 한 곳에 모아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한 사실로 규명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1. 36-43절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말씀입니다.

이들이 이 말을 하고 있을 때에 주님께서 이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자 맨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하신 말씀이십니다. 평강은 주님이 주시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평강은 마음의 평안을 가리킨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소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죄는 사람의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을 심어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죄를 씻고 보면 우리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평안이 깃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원수의 관계를 십자가로 소멸시켜 주신 분이십니다.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을 영접하면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는 한없는 평안이 깃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모든 염려를 맡으시는 분입니다. 너의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려는 근심과 두려움을 안겨주지만 우리 주님이 이 염려를 맡으심으로 근심과 두려움은 물러가고 그 대신 평강만이 넘치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그를 통하여 이 같은 평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십니다.

39절부터 예수님을 부활하진 몸을 제자들에게 확인 시켜 주시면서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씀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한 몸이 어떤 것이냐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하신 가운데 부활의 신비에 대한 비밀을 풀어주셨습니다.

첫째로, 부활한 몸은 육신을 가지고 있음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들이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고 놀라고 무서워함으로 주님은 자기의 몸은 영이 아니라 육임을 밝히시면서 나를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영은 영이므로 사람의 손으로 만져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은 우리의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몸이 무덤에서 그 몸으로 살아나셨다면 그 육신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로, 부활한 몸은 어디든 나타날 수 있는 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말하고 있는 장소에 문을 노크하고 들어오신 것이 아니십니다. 난데없이 갑자기 그들 가운데 서신 것입니다. 육신은 가지셨지만 부활한 몸은 자기 임의로 마음먹은 장소에 아무런 장애물의 구애를 받음이 없이 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부활한 몸은 사람의 눈에 보일 수도 있고 안보일수도 있으며 남이 알아볼 수 없는 다른 모양으로 나타날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엠마오로 두 제자와 함께 동행하실 때 그들의 눈에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셨으나 음식을 잡수실 때에 주님이심을 알 수 있게 하셨으며, 또 그 자리에서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신 것입니다.

그리네 네 번째로, 부활한 몸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또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고 하시고 그들이 내어 주는 생선을 그 자리에서 잡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어느 곳에서 음식을 일정하게 드신 일에 대하여 언급이 없으십니다.

이처럼 부활한 몸은 비록 몸은 있지만 그 행동에 있어서는 영적 존재인 천사와 같으며 그보다 더 우월한 것은 음식도 먹을 수 있으며 육신으로 할 수 있는 일까지 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알아보고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왜요? 부활하신 주님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할 일을 찾지 못해 소망없이 내려가던 인생이 할 일을 찾아 기쁨으로 올라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부활은 이론이 아니고 가상이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내 안에 있던 죽음과 절망, 두려움과 근심의 어둔 세력이 부활의 빛으로 생명으로 거두어진 그 체험이 매일의 우리 삶을 통해 능력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과거형도 아니고 미래형도 아닙니다. 현재의 내 삶이 중요합니다.

부활신앙으로 사는 것, 그것은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자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눈이 어두어 가려진 영혼들의 눈을 밝혀 주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 사랑의 주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충만함으로 부활을 증거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유익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이 날로 풍성해지고 더욱 신령해지며 형통케 되는 복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증인된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삶입니다. 우리모두 부활을 확실히 믿고 부활의 증인으로 이땅을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5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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