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12:1-6 악인의 형통에 대한 질문 302장

12: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12:2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12: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구별하옵소서

12:4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주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 일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12:5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12:6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오늘 말씀은 예레미야가 아나돗 인들의 죄악을 책망하자 백성들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오늘 말씀에서 왜 하나님은 악인이 득세하도록 하시는지 의문점을 질문하는 내용 입니다.

  1. 1-4절은 예레미야의 질문입니다.

1절 중반절부터 보면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죄를 근본적으로 미워하신다면, 왜 사악한 자들의 길이 그토록 번영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묻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이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데, 욥기서에도 욥21:7에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라는 질문이 있고, 하박국서에서도 합1:13에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으로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우리의 고난에는 다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고난의 유익에 대해서 말하기를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현재의 고난을 신앙으로 잘 감수할 때에 주님이 더욱 가까워지며 그 말씀을 더욱 실감 있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원인 중의 하나는 하나님 자신이 이러한 자들을 심었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악인을 번성케 하셨다기 보다는 하나님이 허락해 두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보다 차원 높은 공의와 자비의 실행을 위한 계획이 거기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1. 5-6절에서는 하나님의 반응을 말씀 하십니다.

악인들의 행동에 대해 한탄하는 예레미야에게 보행자와 말의 경주의 차이와 요단의 창일한 홍수에 대해 은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너는 기껏 사람과 달리기 하면서 힘들다고 하는구나. 너는 앞으로 말과 경주할 사람이다! 네가 지금 평안한 땅에서만 살려고 한다면, 앞으로 홍수가 범람할 때는 어떻게 헤치고 살아가겠는가?”

다르게 바꾸면 “네가 잔물결에도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큰 파도와 어떻게 맞닥뜨리려고 하느냐? 조그만 일에도 실망하고 시험에 빠진다면, 더 큰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이렇게 강력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예레미야가 악인들의 형통함에 대하여 하나님께 질문하였다가 벌써부터 지쳐있으면 장차 더 힘든 일을 어찌 감당 하려느냐며 질책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의 상황을 걷는 자와의 경주에 비기셨고, 장차 예레미야가 당할 일을 말과 경주하는 것에, 또 요단강에 물이 넘칠 때에로 비유하셨습니다. 앞으로 그가 당할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악인은 아무리 형통해도 하나님의 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유다가 망할 때 함께 망할 자들입니다. 앞으로 그들이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전혀 받지 못할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자신의 맡은 일로 인하여 당하는 어려움을 좀 더 잘 견뎌주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함몰되어 적당하게 안정을 지키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악한 자가 형통하고 믿음이 없는 자가 더 잘 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자신의 수준을 낮추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말과 함께 달리기를 바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평범한 세상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라, 용감한 말들과 함께 경주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안전과 행복을 추구하는 수준 낮은 삶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달려가겠다는 탁월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죄악의 무리들처럼 죄악을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 고난 받을 수 있음을 기쁘게 여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맡기신 사역에 충성하는 자, 그 일을 맡다가 당하는 어려움을 즐거움으로 당하는 자를 주께서 기뻐하십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고, 맡겨진 사역에 충성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2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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