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24:1-10 무화과 두 광주리의 환상 295장
24: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24: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
24: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
24: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4: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24: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24: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4: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24:9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 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24:10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무화과 두 광주리의 환상입니다.
한광주리는 좋은 무화과이고, 다른 한 광주리는 나쁜 무화과를 보이신 것입니다.
- 1-3절은 무화과 두 광주리입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왕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주전 597년입니다. 그 때 전임 왕인 여고냐, 여호야긴과 함께 그의 모친과 왕비들, 내시들과 방백들, 용사 7천과, 공장ㆍ대장장이 1천 등 1만 여 명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직후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무화과 두 광주리의 환상을 보이셨습니다. 두 광주리 중 하나는 6월에 추수한 무화과처럼 아주 맛이 좋은 극상품의 무화과였고, 다른 한 광주리는 익지 않아 맛이 써서 먹을 수 없는 아주 질이 나쁜 무화과였습니다.
- 4-7절은 좋은 무화과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끌려간 자들이 바로 그 질 좋은 무화과라고 설명하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보아서 아주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세우고 헐지 않으며, 심고 뽑지 않으시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마음을 주어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와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포로로 끌려간 자들이 좋은 무화과인지 쉽게 납득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포로로 붙잡혀 간 자들에게 자비와 은총을 베풀고자 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비록 죄를 범했을지라도 나중에 여호와의 자비를 구하며 회개할 것이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선한 존재들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에게 회개하는 심령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제 이들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 8-10절은 나쁜 무화과입니다.
나쁜 무화과는 시드기야 왕과 귀족들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 그리고 애굽으로 도망간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항복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거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의 뜻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유다 땅에 남거나 애굽으로 피신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더욱 더 마음이 완악해져서 회복 불가능의 상태에 처한 가운데 파멸당하고 만다는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세상 모든 나라 중에 흩어서 환난을 당하게 하실 것이며, 그들이 가는 모든 곳에서 치욕을 당하며 말거리. 즉 조롱과 비웃음과 저주를 당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완전히 멸망을 당할 때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계속해서 내리시리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사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나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간 사람들이 모두 오십보백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비슷한 삶을 살았던 두 그룹이 한 그룹은 하나님께서 친히 돌보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리라 결심하듯 말씀하셨고, 다른 한 그룹은 그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계속해서 내리시리라 역시 결심하듯 말씀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두 그룹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서로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분명히 차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느냐, 혹은 이 죄악 된 유다 세상에 머물러 살기를 원했느냐의 차이입니다.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간 자들은 비록 그들이 유다 땅에 머물러 있던 자들과 똑같이 죄를 범했던 자들이라 하더라도, 예레미야로부터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 된 자들을 통해 새로운 신실한 신앙 공동체를 세우시리라는 말씀을 듣고 항복을 결단을 한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바벨론에 간 자들 중에 유다 땅에 남아있는 자들보다 더 상황이 나쁜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를 원하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그 꿈을 향한 길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벗어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을 하나님께서 멸하신 자로 여기고 교만하게 그들을 깔보았습니다. 그들은 요령 있게 잘 피하여 포로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조롱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를 거부했다는 점입니다. 자기들이 마련한 삶의 터전이 안전하다고 여기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하나님을 부르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이들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된 이유입니다.
포로로 끌려간 자들은 많은 고통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징계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회개 시키고 연단하여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감사함으로 받고 신앙의 성숙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나쁜 무화과로 비유된 사람들처럼, 인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회피하려고 하면 영원히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서 떠나지 말기를 바랍니다. 결국은 그 어려움의 시간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순금같이 만드시는 하나님을 경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22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