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28:1-9 예레미야와 하나냐 찬송:400장

28:1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 기브온 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28: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28:3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28:4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28:5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하니라

28:6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니라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

28:7 그러나 너는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잘 들으라

28:8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28: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라

본문의 말씀은 예레미야와 거짓 선지자 하나냐와의 대립의 말씀입니다.

  1. 1-4절은 거짓을 예언하는 하나냐입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바벨론의 주권에 복종할 것을 권고하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적하여 두 해가 차기 전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멍에를 꺾고 바벨론 포로와 성전 기구들을 다시 회복하여 귀환하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하나냐와 예레미야 두 선지자는 서로 정반대의 것을 예언하면서 둘이 다 같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예언을 합니다.

정 반대의 두 예언을 듣고 있는 청중들은 어느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인지 무슨 근거로 어떻게 바르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둘 다 미래의 일을 예언하고 있으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는 어느 것이 참된 예언인지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때 가보아야 어느 말이 참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택은 지금 해야 합니다. 예언이란 이렇게 미래를 말하는 것인데, 그 미래의 일은 지금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데 미래의 일을 오늘 어떻게 선택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진리의 길을 찾으면 됩니다. 그 진리의 길을 따라 하나님께서 복과 저주를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는 그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진리의 길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도록 분별의 지혜, 분별의 영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1. 예레미야가 하나냐를 반박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냐의 예언에 대해 예레미야가 바벨론의 멍에가 계속될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하나냐의 예언을 예레미야는 반박 합니다.

사람이 듣기에는 하나냐의 설교가 예레미야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라 할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왕을 섬기라고 예언하고 있는데 반하여 하나냐는 바벨론 왕의 멍에를 받아들이지 말고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말하는 그의 예언이 거짓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이유는 왕과 귀족들이 원하는 말을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말하는 것이었으므로 이 일을 알기 위해 그때의 상황을 좀 더 알 필요가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초기 4년간 제대로 왕권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귀족들이 친 애굽 사람들이었는데,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년이 되던 해에 주변 나라의 사신들을 불러 그들과 함께 연합하여 바벨론을 반대하는 일을 주도하면서 시드기야는 유다 사회를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냐는 시드기야가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시작한 바로 그때에 시드기야 왕과 유다의 귀족들이 듣고자 하는 말을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럴듯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성도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하는 설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냐의 예언은 유다 백성을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게 하려는 동기에서 나온 예언이 아니라, 왕과 귀족들의 환심을 사서 자기에게 있는 기득권을 더욱 강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예언입니다. 이처럼 그 동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은 설교를 거짓 설교라고 말합니다.

셋째 이유는, 회개 없는 평화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아멘’이라고 응수하며 자신도 하나냐의 말이 이루어져서 남왕국 유다가 속히 회복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고 말한 것도 바로 유다가 회복되기를 원해서 선포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냐가 말한 대로 바벨론 포로지에서 2년 만에 속히 돌아오려면 지금 당장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 땅 어디에서도 회개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 없는 평화를 외치는 하나냐의 예언은 거짓 예언입니다.

이런 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회개 없는 축복의 남발입니다. 회개도 하지 않았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지리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지금까지 증거한 선배 선지자들이 한결같이 유다의 패망을 예언하였었는데 지금 하나냐는 선배 예언자들과 정반대의 예언을 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2년이 지나면 그의 말이 참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모든 예배와 설교는 듣는 나를 감동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그 예배와 설교를 통해서 아무리 감동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는 나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지 않았다면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귀만 즐겁게 하는 설교, 내 마음에 감동을 주는 예배 형식만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예배와 설교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때론 이런 예배와 설교는 때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는 예배와 설교가 감동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입에 쓴 약이 내 몸에 좋은 것처럼, 때로 불편한 예배와 설교가 나의 영적인 삶을 더욱 건강하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참된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바른 길을 선택할 용기와 결단력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결코 내 귀만 즐겁게 하는 것을 찾지 말고 내 영을 건강하고 바르게 할 것을 찾아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27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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